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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삼국지 [203] 금관가야의 멸망 ①
신라군에게 저항해 봤자 무의미한 죽음을 자초할 뿐입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08 06:30:10
  
 
신라군은 낙동강을 건너 다다라벌에 이르렀다. 이곳은 금관국에서 지척이었다. 이사부는 벌판에 진을 친 후에 더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군사들과 활쏘기와 포환던지기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신라군이 다다라벌에 당도했다는 소식에 금관국은 잔뜩 긴장한 채 그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항상 신라를 견제하고 있던 백제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 역시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이사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금관국 사람들은 차츰 경계를 풀었다.
이때 신라 조정에서는 이사부의 행동을 두고 많은 말이 오고 갔다. 특히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상대등 철부가 왕에게 참언했다.
이제 이사부도 늙은 듯합니다. 석 달이나 다다리벌에 머물며 나아가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필시 싸움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어서 이사부를 소환하시고 새로운 장군을 보내도록 하십시오.”
이찬 막석도 동조하고 나섰다.
이사부가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왕명을 받고도 꼼짝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여기저기서 이사부를 참소하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법흥왕은 이런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오랫동안 쌓아 온 믿음은 어떤 참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사부는 다다라벌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그는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임무를 팽개치고 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사부는 활쏘기와 포환던지기로 군사들을 훈련하면서 강맹한 군사를 추려 냈다. 한편으로는 마치 솔개가 하늘에서 빙빙 돌며 먹잇감을 노리듯 상대가 방심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관국은 쇠잔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곳을 정벌하기 위해서는 허를 찌르는 전술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이사부는 드디어 군사들에게 출진을 명했다. 선두에는 특별히 선발한 강병 3천을 세웠다. 그동안 훈련만 받느라 답답했던 신라 군사들은 진군 명령이 내려오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신라군은 마치 바람을 탄 구름처럼 막힘없이 금관성을 향해 나아갔다. 적당한 휴식과 훈련으로 다져진 군사들의 걸음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이사부가 이끄는 신라군은 화다촌(和多村)과 비지촌(費智村)을 북 한 번 울려서 제압하고 곧바로 금관성으로 쳐들어갔다. 방심하고 있던 금관국의 구해왕은 갑작스러운 신라군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자국의 전력만 가지고는 막아 내기 어려운 데다가 백제나 탁순국에 지원을 요청해도 호응해 줄지 모를 일이었다.
금관국 왕의 둘째 아들인 무덕(武德)이 아뢰었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사직을 보존키 어렵습니다.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맞서야 합니다.”
셋째 아들인 무력(武力)이 극구 반대했다.
당장 항복해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신라군에게 저항해 봤자 무의미한 죽음을 자초할 뿐입니다.”
기울어 가는 금관국이 부쩍 커 버린 신라와 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무력은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세상의 이치나 처세에 밝았다.
구혜왕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리만 싸매고 있자 잠자코 있던 노종이 목청을 높였다. 그는 구해왕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일갈한다.
우리가 쇠약해져 가야 맹주의 지위까지 잃기는 했지만 시조이신 수로왕께서 세우신 사직을 우리 대에서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당장 백제로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하시고 성민을 총동원하여 목숨을 걸고 신라군과 맞붙어야 합니다.”
노종과 무덕이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지만 심약한 구해왕으로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항복하자는 무력의 말이 훨씬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금관국 왕은 고심 끝에 신라군에게 항복할 결심을 굳히고 이사부에게 사자를 보냈다.
 
이사부가 지휘부 막사에서 장수들과 금관성 칠 일을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경계를 서고 있던 군사가 들어와 구해왕의 사자가 왔다고 알렸다.
이사부는 미소를 띠며 주변을 둘러봤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금관국을 얻을 수 있겠구려.”
사자는 막사로 들어와서 예를 갖추고는 항복의 뜻을 전했다.
저희 임금님께서는 장군께서 우리의 안위를 약조하신다면 항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런 걱정 마시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하지 않았소.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리다.”
이사부의 확답을 받은 사자는 금관성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성문이 열리더니 구해왕이 세 명의 왕자와 대신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 밖으로 나왔다.
구해왕은 관을 벗고 땅에 엎드려 항복 의식을 치렀다.
이사부는 구해왕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위로했다.
우리 폐하께서는 결코 그대와 식솔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다른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서력 522, 김수로왕 이후로 수백 년의 영욕을 이어 온 금관국은 구해왕 대에 이르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한과 서방 여러 나라·왜 등과 교류하며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던 이 나라의 멸망은 강국 백제와 신라 사이에 낀 가야 소국들의 운명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법흥왕은 금관국을 금관군으로 개편하는 한편 구해왕을 맞이하여 후대하고 귀족의 신분과 식읍을 내렸다. 그의 세 아들에게도 관직을 내려 중용했다.
 
탁순국 왕의 손님으로 왕궁에 머물고 있던 왜의 사신 모야신은 주변의 혼란을 틈타 탁순국을 차치하겠다는 엉뚱한 마음을 먹었다. 먼저 아리사등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후에 백제와 신라의 역학 관계를 이용하면 탁순국에 뿌리내리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였다.
모야신은 아리사등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구례모라촌(久禮牟羅村)의 토호들을 규합하여 반기를 들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아리사등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신라와 백제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는 늑대를 쫓아내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격이었다.
백제의 성왕은 아리사등의 요청을 받자마자 걸탁성에 주둔하고 있던 윤귀에게 명을 내려 탁순국을 구원케 했다. 금관국을 병합하고 가야 지역에서 지배력을 높여 가는 신라에 대한 견제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에 비해 금관국 병합 이후 다른 가야 소국의 시선을 의식해서 군사적인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던 신라는 탁순국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왕명을 받은 윤귀는 걸탁성을 떠나 모야신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배평(背評)에 이르렀다.
백제군이 나타나자 모야신은 크게 당황했다. 이처럼 빨리 움직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다. 아리사등을 몰아내고 탁순국의 정권을 잡으려던 구례모라의 토호들도 백제군의 출현에 동요했다.
모야신은 백제 대장군 윤귀를 설득하기 위해 세객(說客)을 보냈다.
윤귀는 모야신의 사자가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고 막사로 들이라 했다.
세객이 윤귀에게 은근히 청한다.
좌우를 물려 주십시오. 장군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장 마로(馬老)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뢴다.
저자가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저희가 옆에서 호위하겠습니다.”
윤귀가 웃으며 대답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혼자서 나를 어찌하겠느냐.”
윤귀는 장수들을 모두 물리고 사자와 독대했다.
세객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희 주군께서는 백제의 대왕께 충성을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이번 일만 눈감아주신다면 앞으로 백제의 충실한 신하로 복속하겠습니다.”
윤귀는 예전부터 모야신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왜국의 일개 신하 주제에 삼한의 일에 끼어드는 것도 혐오했고, 자신의 이()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다니며 이 말 저 말 옮기고 다니는 것도 못마땅했다. 그의 눈에 비친 모야신은 이익만을 쫓는 협잡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사람과 어찌 큰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윤귀는 모야신의 제안을 차갑게 거절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군대를 해산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목숨을 건지기 어려울 것이다.”
세객은 설득은커녕 말도 제대로 붙여 보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윤귀는 군사를 이끌고 모야신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백제군의 위용에 기가 질린 구례모라의 토호들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우두머리가 도망치자 군사들도 싸울 의욕을 잃고 항복했다.
백제군은 힘들이지 않고 모야신의 군대를 토벌하고 구례모라의 토호들을 생포했다.
이때 모야신만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항구로 도망쳤다. 그는 거사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 천주항에 금관국과 왜 사이를 왕래하는 교역선을 대기시켜 두고 있었다. 모야신을 태운 배는 동해를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모야신의 군대를 토벌한 백제군이 도성 앞에 당도하자 탁순국 왕은 성문을 열고  나가서 윤귀 장군을 영접했다.
윤귀는 아리사등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군사들을 시켜 포박했다. 왕을 호위하던 군사들은 백제군의 칼 아래 맥없이 쓰러졌다. 탁순국 왕은 반항 한번 못 해 보고 결박되어 대장군 앞으로 끌려갔다.
윤귀가 아리사등을 차갑게 내려다봤다.
그대가 백제에 복속할 것을 맹세한다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나 거부한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아리사등은 그제야 백제군을 끌어들인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탁순국 왕은 모든 걸 체념하고 윤귀의 말에 따르기로 약조했다.
윤귀는 아리사등을 풀어 준 뒤 구례모라에 성을 쌓아 군사를 주둔시켰다. 구례산 근처 다섯 성의 성주들이 이에 반대하자 다섯 성을 초토화해 백제군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이리하여 탁순국은 백제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임동주 글 이영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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