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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북한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곳은 음식점이다. 거리에서는 함흥냉면·개성만두·신의주찹쌀순대·사리원불고기 등 북한 지명의 음식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6·25 전쟁 등 여러 이유로 북녘 고향을 떠난 실향민이 많고 북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평양냉면의 경우는 마니아층이 두텁고 한참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곳이 여럿인 음식이다. 평양냉면의 질주는 실향민들에겐 아련한 고향 맛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냉면은 맛의 기억을 통한 귀향인 동시에 추억을 돌이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 냉면을 판문점 통일각으로 공수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대접하면서 국민적 관심과 인기가 치솟는 계기가 됐다.
당시 김 위원장의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왔습니다. 멀리 온 평양냉면, 아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이날 이후 평양냉면은 물론 함흥냉면·막국수·칡냉면 등 비슷한 면 장사가 일시적 호황을 누렸다는 후문이다.
탈북 요리연구가 이애란 능라밥상 대표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평양냉면집과 함흥냉면집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신기한 것은 북한에는 남한 지명을 딴 음식점이 한 곳도 없는데 남한에는 북한 지명을 쓴 상호로 북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 무척 많다는 점이다. 냉면은 남한에서나 북한에서나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음식의 하나로 통일이 됐을 때 남과 북의 사람들을 밥상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고 한 정부 매체에 글을 남겼다.
北 평랭 지난해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평양냉면은 지난해 11월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제17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에서 ‘평양랭면풍습’이란 명칭으로 인류의 대표적인 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는 북한이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등재 명칭이 북한식 표기인 ‘랭면’으로 표기됐다. 북한에서는 무형유산을 ‘비물질유산’이라고 부른다.
당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평양랭면풍습이 인류의 대표적인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이란 제목으로 등재 소식을 전했다. 민요 아리랑(2014년)·김치 담그기 풍습(2015년)·씨름(2018년)에 이어 네 번째 등재다.
유네스코는 평양냉면에 대해 “평양랭면(주로 메밀로 만든 냉면)은 북한의 전통적인 사회 문화 음식이다. 놋그릇에 담겨 나오고 고기·김치·야채·과일 등 고명을 얹는다. 시원한 고기 육수나 동치미 국물을 면 위에 부어 준비한다. 평양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를 둔 전통 민속음식으로 장수·행복·환대·향락·친근함과 관련이 있으며 존경·친밀감·단결을 촉진한다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두고 가족과 이웃이 모여 국수를 먹으며 명(命)이 면발만큼 길기를 바란다. 생일이나 결혼식과 같은 축하 행사에서 평양 사람들은 친척·이웃·친구들을 위해 축복과 함께 제공한다. 술을 미리 마시는 것이 관례”라고 적고 있다.
유네스코의 설명에서 평양냉면에 대한 중요한 식문화 단서가 발견된다. 다름 아닌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술을 미리 마시는 것이 관례’라는 말로 선주가 관습적 식문화인 것을 강조했다. 이는 물론 북한 측에서 제공한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평양냉면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인 ‘선주후면’ 문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어 온 식문화였음을 알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이어 온 선주후면 식문화
선주후면은 훗날 선육후면(先肉後麵)이란 말로도 통한다. 이는 냉면을 먹기 전 제육이나 편육 등 냉면 육수를 만들기 위해 삶았던 돼지고기나 소고기 수육과 술을 한 잔 먼저 한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평양냉면 면옥에서 수육을 팔고 있으며 수육 종류나 냉면 고명을 살펴보면 그 식당의 육수 재료를 가늠할 수 있다. 대부분의 면옥들에서 수육 판매로 기본 지출을 모두 커버하고 냉면 판매는 순익이라고 할 정도로 매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북한식 오리지널 평양냉면 레시피는 순면이 아닌 감자농마가루(전분)를 살짝 섞는 것이다. 정통 레시피는 △메밀가루 105g △감자농마가루 45g △닭고기 80g △돼지고기 70g △소고기 60g △무김치 40g △배추김치 40g △배 15g △닭알 1알 △오이 10g △잣 4g △무 40g △파 5g △마늘 2g △고기국물 200ml △동치미국물 100ml △고춧가루 3.5g △간장 16g △사탕가루 1.5g △겨자장 3g △식초 20g △중조 3g △소금 11g △맛내기 3g이 들어간다.
우리식으로 풀면 메밀 함량 70%짜리 평냉이다. 우리는 소와 돼지고기 함량이 많지만 북한에선 닭고기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 과거에는 닭 대신 꿩고기를 사용했다. 소·돼지보다 닭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재료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옥류관 냉면을 보면 면발이 검다. 이는 메밀껍질을 벗기지 않고 통째로 갈아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면에서 나는 특유의 매캐한 냄새는 미리 만들어 놓은 반죽이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쓰는 중조(소다)로 인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평양냉면 고유의 맛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냉장 시설이 발달하면서 한 여름에 시원하게 즐기는 음식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겨울을 이기는 이냉치냉(以冷治冷)의 지혜가 담긴 겨울 별미로 유명했다. 이열치열과 이냉치냉이 인체에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한방 상식이다.
절기가 입추와 처서를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있으면 어느새 새하얀 입김이 나오는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그럴 때면 냉면은 또 한 번 계절 음식으로 마니아들을 면옥으로 이끌 것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발전은 젊은 층 사이에서 평양냉면 소비문화와 팬덤 확산에 속도감을 더했다.
젊은 평냉족 늘면서 신흥 면옥 개업 러시
평양냉면은 더 이상 북한 실향민이나 노령층의 추억의 미식 문화가 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음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젊은 마니아층은 줄을 서서 먹는 평양냉면 식당을 찾아 나섰고 시장은 이를 간파하고 신흥 면옥의 등장을 촉발했다.
서울 오류동 옥돌현옥·영등포 서도냉면·연남동 우주옥·신대방동 서평면옥·구로동 평양옥·종로 류경회관·독산동 진영면옥·삼성동 광평·광장동 태천면옥·강화도 서령·김포 연미소관 등 서울과 수도권에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평양냉면 식당이 많이 생겼다.
문을 연 지 오래된 우래옥·을밀대·필동면옥·평양면옥·봉피양·남포면옥 등 기존 노포들은 여전히 길게 줄을 세우고 선방하고 있지만 업력만큼이나 식객들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맛보다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다. 서비스에는 가격적인 부분도 있다. 노포 냉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그래서 가성비 좋은 평양냉면 식당 등장에 환호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평양냉면 가격 가성비 마지노선은 1만2000원 안쪽이다. 최근 다녀온 냉면집 중에서 쾌적한 공간과 맛있는 요리에 적당한 가성비를 접한 곳은 구로역에 위치한 NC신구로점과 신대방동 서평면옥이다. 물론 홍대입구 상원냉면·영등포 서도냉면 등은 가격이 더 싸고 맛도 앞서 얘기한 면옥들의 냉면에 못지않다. 독산동 진영면옥도 평판이 좋다. 다만 아직 가 보질 않은 관계로 뭐라 평하기 어렵다. 기회를 만들어 꼭 들러서 가성비 좋은 신흥 면옥의 저력을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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