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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인터뷰] “봉사가 곧 구도의 길” 50년 이웃 사랑 실천-안호원 목사
“나눔은 함께하는 삶… 행복 사회 여는 지름길”
中3 때 보육원 봉사… 축복과도 같은 행복에 빠져
남에게 부담 주는 후원회 대신 청소 등 스스로 나서
“봉사도 습관 돼야… 자주 하다 보면 어렵지 않아요”
임한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31 11:24:57
▲ 안호원 목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나눔과 봉사를 통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을 갖출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박미나 기자
 
“모든 예술의 본질은 기쁨을 나누는 데서 오는 기쁨이죠. 봉사도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이웃과 어울려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안호원(74) 목사는 40년 넘게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터줏대감으로 살면서 지역 봉사를 꾸준히 해 온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으로 다양하다. 시인·수필가·한국화 화가·교수·경비행기 조종사·자격증 수집가·오페라 배우 등.
 
안 목사는 영달은 한낱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왕지사 이 세상에 살면서 소중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갈량처럼 부채를 갖고 다닌다는 안 목사는 부채가 여러모로 자신에게 유용한 물건이라고 설명했다. 부채질로써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부채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가려 감정을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부채에는 묵언·체념·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글자가 적혀져 있다. 약팽소선은 생선을 구울 때 자꾸 뒤집으면 으스러지듯 매사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이다. 그는 요즘 이 글귀들을 금과옥조로 여긴다고 귀띔했다.
 
반백 년 봉사하는 삶 실천 
 
 
▲ 안호원 목사는 우리 사회의 진짜 나쁜 병폐는 다른 사람을 속여 그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해 이익을 보려고 하는 비도덕성이라고 지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크리스마스 이브 날 교회에서 평택의 한 보육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봉사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꼈고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죠. 그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힘으로나마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었어요.”
 
이후 ‘봉사하는 구도자’의 길로 들어선 그는 틈틈이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지역사회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쳐 왔다. 그는 사회에서 넉넉하게 사는 것도 어렵게 되는 것도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가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사회의 덕을 본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회에서 혜택을 본 사람이 사회 때문에 불리해진 사람들을 돕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요.”
 
그는 우리 사회가 제도를 만들어서 세금도 걷지만 한국처럼 갈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의식적으로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은 우리보다 사회복지 제도가 훨씬 잘돼 있는데도 기부가 우리나라의 몇 배나 되죠. 나눔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거예요. 봉사활동을 하면 사람들이 이런 얘길 해요. 나누고 배려하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요. 나눔은 행복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에요.”
 
그는 우리나라도 요즘 전화 버튼만 누르면 쉽게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며 기부도 자꾸 해 봐야 하는 것이지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뭐든 습관이 중요한 것이죠. 직접 봉사도 하고 기부를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꼭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배움의 마음으로 봉사에 도전
 
▲ 그는 70세가 넘은 고령임에도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사회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에게 비법을 묻자 ‘영업맨 정신’으로 사람을 만난다고 털어놨다. 인간관계를 잘하려면 결코 ‘갑’이 돼선 안 된다며 항상 ‘을’의 자세로 상대를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 목사는 방송대를 20년 넘게 다니며 지독스럽게 공부해 온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가 방송대 문을 두드린 것은 50대 초반인 2001년이다. 
 
글 쓰는 법을 체계적으로 기초부터 공부하기 위해 국문학과 1학년에 입학했지만 일을 하며 학업을 수행해야 했기에 13년간 대학문을 나서지 못했다. 국문과를 졸업한 뒤에는 법학과·청소년교육과에서 공부했다. 다방면으로 활동했던 그는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배움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격증 왕’으로도 유명하다. 교사자격증 외 스포츠마사지·응급처치사·발 마사지사 등 자격증을 25개나 취득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필요하리라 생각되어 평생교육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부란 모르는 걸 깨우치고 알아 가는 과정이죠. 늘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그런 배움의 마음이 있어야 정신도 맑고 건강해질 수 있죠.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수십 년간 훈련받았듯 저 역시 단 하루라도 주님께 쓰임 받을 날을 위해 준비한 거죠.”
 
안 목사는 영등포 아버지 합창단 부단장 겸 베이스 파트장으로서 매년 공연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찾아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는 예술 활동도 펼치고 있다. 2008년부턴 법무부 청소년 선도위원으로서 비행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상담 활동도 해 오고 있다.
 
그는 봉사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야간에 빌딩 청소 일을 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현재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아 봉사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주위에서 “후원회를 만들면 덜 고생하실 텐데”라며 격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생각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혼자서 하려니 힘들긴 해도 눈치보지 않고 떳떳하게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간혹 몇몇 지우들에게 헌금을 후원받아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는 “최근 들어 나이가 든 탓인지 봉사가 무척이나 힘에 부쳤지만 나를 기다리는 분들의 눈빛이 생각나 포기할 수 없다”며 속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건강 비결에 대해 그는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린 점을 꼽았다. 분노는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켜 몸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풀기 위해 다시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하게 하는 백해무익한 감정일 뿐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이지만 어쩌다 화가 날 경우 무조건 걸어요. 걷다 보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마음이 풀리죠. 특히 우울할 때는 장르와 관계없이 가곡·가요·찬송가를 가리지 않고 마구 불러요. 그러다 보면 마음의 억울함이 해소되지요.”
 
그는 목회자의 자질에 대해 특별한 건 없다고 말했다. 목회자도 인간이기에 선한 인간처럼 살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 목사는 단지 한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베풂의 마음으로 나눔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무리 목회자라고 해도 다른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라고까지는 요구하고 싶지 않아요.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거죠. 우리 국민이 나눔과 봉사를 통해 이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을 갖췄으면 좋겠어요.”
 
경력 △한국 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운영위원 법무부 범죄예방위원회 상담위원 경찰청 경목위원회 중앙위원 한국 심성교육개발연구원 원장 △고양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원 △대한민국 최고인증 기네스북 등재(50년 사회봉사) △월탄 박종화 예술문화상 은상(미술부문) △자랑스런 공군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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