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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미디어 알고리즘에 따라 국악 공연 장면들이 자주 뜨는 것을 본다. 세계가 우리 전통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 정악 공연을 접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알고리즘이란 것이 참 신통할 뿐이다. 종묘제례악 같은 정악을 들으면 영혼의 심금을 울리는 심오한 음의 세계에 빠지다가, 또 취타로 메뉴를 바꾸면 우리 전통의 우렁찬 기백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명금일하(鳴金一下) 대취타(大吹打) 하랍신다.” ‘징 한 번 울리고, 크게 불고 두드린다’는 대취타는 진노랑 철릭을 입은 취타대의 연주로, 진취적인 기상을 담고 있다.
왜 자꾸 ‘우리’의 새로운 면들이 예사롭지 않게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우리가 몰랐던 ‘우리’를 찾는 과정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아주 오랫동안 내적 성찰보다는 바깥을 살피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설치작가 심영철(전 수원대 교수)의 근작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국뽕’ 뉴스가 출몰하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때를 맞춰 작가 작업의 변화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작가의 작업을 지켜본 필자는 그의 작업에서 서구적 양식과 트렌드·방법이 두드러지는 것을 느껴왔다. 속된 말로 토속적인 된장 맛보다는 서구의 버터 풍미가 더 짙게 느껴지는 작가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근작에서 ‘우리’라는 화두가 상당히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작가가 향후 ‘우리’에다 포지셔닝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인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현재의 컨텐츠만으로 볼 때 의미 있는 변화인 것은 분명하다.
심영철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열정과 낭만의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90년대부터 ‘일렉트로닉 가든’을 비롯해 ‘모뉴멘털 가든’ ‘매트릭스 가든’ 등의 각종 정원 연작의 설치와 미디어 작업을 발표해 왔다.
그는 자연과 인간·예술과 과학기술 등이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공생하는 것을 노래하며 역설하는 메시지를 어필하는 작가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을 보면 공간의 다변적 연출과 구성, 작품과 관객의 다양한 상호작용 및 접촉이 기반이 되는 인터액티브 등에서 열정과 서사의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주로 ‘꽃과 빛’이라는 소재를 통한 생명의 신비로운 에너지와 상상력으로 가득한 상징 체계가 바로 오늘의 작가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스텐레스 구나 구슬·영상·홀로그램·광섬유·자개·유리 등의 다양한 재료와 광폭의 물성 활용 등이 작가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스텐레스 오브제의 경우 빛을 반사시키는 물성으로 인해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군집의 조합과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몽환적인 꽃으로 변신하는 마술 같은 연출이 압권이다.
이번 전시(선화랑, 3.31-4.27)의 주제는 ‘춤추는 정원’으로 명명하고 있는데, 대체로 우리 전통 철학이나 세계관에 토대를 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이 전시는 크게 네 가지 소주제로 구성된다.
첫번째가 ‘꽃비정원’이다. 전시장 전체가 천장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오는 순백의 꽃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봄의 절정이자 축복의 파라다이스로서 상상과 환각을 경험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무한하고 초월적인 생명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담고 있다. 아름다움과 황홀함의 극치이면서도 안타까운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작품 자체가 생명에 대한 장엄하고도 감상적인 서사시가 아닐 수 없다. 무수히 많은 나전 패각들과 공간을 연출하는 영상의 조합은 가히 감각의 아성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 많이 써 왔던 스텐레스 구와는 대조적인 질감의 자개라는 물성이 따뜻하고 감각적인 몰입도를 배가시켜 준다.
두 번째가 ‘흙의 정원’이다. 작가의 생명에 대한 서사는 흙이라는 물질을 매개로 하고 있다. 흙은 생명과 식생이 배태되는 터전인데, 문제의 전통적 아이콘 외에도 우리의 전통 음악과 오행의 세계에 뿌리를 둔 조형이라는 점에서 화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거대한 기념비적 입체의 청자와 10미터가 넘는 벽을 메운 산수화 이미지의 미디어가 관객을 압도한다. 여기서 청자는 흙과 불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되는 존재에 대한 상징이자 우리 전통문화의 집약적 아이콘으로서, 서로 마주 보는 대응의 조합이 흥미롭다. 한편 산수는 우리 자연, 특히 세세토록 보전되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터전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청자 이미지나 산수 이미지 또한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을 곁들여 패턴 속의 꽃이나 자연 속의 꽃을 표현하고 있는 게 흥미롭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정적이고 미니멀한 연출 속에 ‘우리’ 외에도 다양한 해석과 서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물의 정원’이다. 흙이나 물·불·공기 등에 대한 담론은 동서고금의 자연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다뤄 온 테마이기도 하다. 바닥의 물 위로 거대한 생명의 꽃이 솟아나 있다. 이전의 작품들 가운데 연꽃을 묘사한 것과 유사한 데가 많다. 이는 생명의 원천이자 상징으로 스테인리스 파이프가 많이 사역되고 있다. 꽃의 면을 표현하는 대목에서 드로잉처럼 선묘를 보이고 있는데, 동물의 혈관을 연상케 한다. 피가 통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기술해 놓은 것이다. 구체의 경우는 마치 꽃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보이는데,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거대한 대하와 대양으로 변화되는 장면까지도 비약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네 번째가 ‘하늘 정원’이다. 보이드 작업 양식으로 인물 이미지를 통해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앞의 세 공간과 달리 해석적으로나 구성적으로 밀도면에서 임팩트를 주지는 못하고 있다. 워낙 ‘꽃비 정원’의 인상이 강한 것과 비교가 된다. 다만 수직의 선들에 달린 모듈들이 포옹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묘사해 눈길을 끈다. 빛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음양의 조화와 그 기운들이 온 천지에 가득함을 역설하고 있음이다.
확실히 작가의 근작은 이전의 작업보다 사유를 더 심화시키고, 특히 그것이 ‘우리’라는 실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물론 큰 흐름에서 일반 작가들처럼 심영철 작가 또한 조형의 보편성 위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우리’의 정체성과 정서를 전보다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점을 의미 있게 보고자 한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많기에 ‘우리’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삼라만상이 아름답게 채색되고 있는 황홀한 봄이기에 더 반가운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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