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렌이 없었다면 발자크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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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렌이 없었다면 발자크가 있었을까

프랑스 문학의 거목 발자크의 탄생지 뚜렌
서정성과 관능미 넘치는 프랑스 최대의 성(城) 집성지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31 09:55:04

프랑스인들의 추앙을 받는 오노레 드 발자크. 그는 문학계의 거목이었다. 길지 않은 생애에 수려한 소설을 100편 이상 썼고, 2000명 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방대한 작품 ‘인간희극’을 써서 불멸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1799년 파리 남서부 뚜렌에서 태어난 오노레.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프랑수아 발싸는 22사단 식품군납 관리 책임자였고, 어머니 안 샤를롯트-로르는 장식끈 제조업자의 딸이었다. 샤를롯트-로르는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쉰 살 중년의 남자 발싸와 결혼했다. 반백이 넘어서 얻은 늦둥이를 발싸는 이상하게도 사랑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꼬마 오노레는 기숙학교에 입학해 일찍 부모 곁을 떠났다. 그는 6년간 단 한 번도 친가에 가지 않았다. 대신 모든 장르의 책들을 섭렵했다. 독서는 그에게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이었다. 열다섯 살 때 전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오노레 가족은 파리로 이사했다. 발싸는 프랑스 혁명 전 파리지엥(파리 사람)으로 살기 위해 성(姓)을 발자크(Balzac)로 바꿨다.

오노레는 샤를마뉴 고등학교에 진학해 역사학자 쥘 미슐레 선생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대법원 판사가 되려고 법과대학에 입학하기로 했다. 법과대학 자격시험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을 포기하고 결국 작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옥탑방에 들어와 글을 쓰라며 이런 그를 용인해 줬다.

1820년 발자크는 첫 작품 ‘크롬웰’을 썼다.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글을 써서 출판했다. 그러나 쓰는 대로 모두 실패했다. 스물두 살 연상의 여인과 연애하면서 돈도 몽땅 써 버렸다. 빚더미에 빠진 그는 생존을 위해 문학 작품 대신 신문 연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십여 년간 이 생활을 하면서 그는 잡지를 창간하는 등 모험을 계속했다. 여전히 실패했지만 발자크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쉬지 않고 원고를 쓰고 다듬는 작업을 했다. 책이 나오기까지 열일곱 번이나 출판사와 원고를 주고받는 경우도 있었다. 1830년대에 발자크는 문학적으로 성숙했다. ‘외제니 그랑데’ ‘고리오 영감’ ‘골짜기의 백합’ 등 굴지의 작품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1842년에는 ‘인간희극’을 출판할 수 있게 됐다.

이 주옥같은 글들은 발자크의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 폴란드 여인 이브 한스카는 이런 그를 흠모했다. 총사령관의 아내인 이 여인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었다. 발자크도 이 여인을 사랑해 둘은 장거리 연서를 마라톤급으로 주고받았다.

한스카의 가족은 둘이 사귀는 걸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1843년 한스카 부인의 남편이 죽자 발자크는 이 여인을 자주 찾아갔고 결혼을 간청했다. 같은 해 이들은 유럽 여행을 함께 하면서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다. 발자크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려고 거액의 돈을 썼다. 그러나 운명은 너무 가혹했다. 1850년 3월 14일 우크라이나에서 결혼식을 올리기 전 한스카는 사산했다. 과로로 지친 발자크도 얼마 후 심장발작으로 숨을 거뒀다. 결혼 5개월째에 벌어진 일이었다.

발자크 문학의 산실은 뚜렌이었다. 소년기에 떠난 고향이지만 그는 그곳을 종종 찾아갔고 항상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뚜렌 한가운데에 있는 사세 성에서 그는 많은 영감을 얻었다. 이 성의 골방에서 번잡한 파리와 고통스런 빚 문제를 잊고 매일 18시간씩 글쓰기에 몰두했다. ‘고리오 영감’ ‘루이 랑베르’ ‘세자르 비로토’ ‘잃어버린 환상’은 모두 여기서 집필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세 성이 직접 영향을 준 작품은 앵드르 계곡의 목가적인 풍경을 묘사한 ‘골짜기의 백합’이다.

뚜렌은 발자크에게 고향을 뛰어넘어 관능의 미가 불타는 곳이었다. 걸작 ‘골짜기의 백합’에서 그는 뚜렌의 서정성과 관능미를 잘 묘사하고 있다. 궁정의 축제에서 훔친 키스 장면은 마법의 순간이지만 소설에서는 저주의 상징으로 설정돼 있다. “동방의 시가 내 영혼을 비추듯 여인의 향기가 내 영혼을 비추는 걸 느꼈다. 나는 옆의 여인을 바라보았고, 그 여인에게 매혹됐다. 그 여인은 내 축제의 전부가 됐다.”

이 소설에서 그는 또한 “왜 내가 뚜렌을 좋아하는지 더 이상 묻지 마라. 나는 인간이 요람을 좋아하거나 사막의 오아시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뚜렌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은 예술가가 예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뚜렌 없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뚜렌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묘사다.

▲ 프랑스 왕들이 여름을 즐겼던 뚜렌의 클로 뤼세 성. (사진=위키피디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뚜렌과 루아르!! 프랑스 최고의 성들이 있는 도시다. 알알이 박힌 이곳의 성들은 밤하늘의 별과 같다. 파리 남서쪽 250킬로 지점에 있는 뚜렌. 이 도시는 프랑스 왕국의 중심지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예술과 건축술을 최초로 발전시켰다. 문화와 예술에 심취했던 프랑수아 1세는 재위 32년 중 절반을 여기서 보냈다. 그 위력은 뚜렌의 성들로 나타났다. 뚜렌이 수 십 개의 성들로 가득 찬 이유다.

프랑스 최대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 있는 이곳에 신은 맛의 풍미까지 선사해 완벽한 미를 자랑하게 했다. 이곳은 맛의 고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신은 전혀 공평하지 않게 뚜렌에 모든 것을 몰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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