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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재한 이란인 네트워크
“우리의 외침이 이란 민주화 밀알 되길”
한국에서 조국 이란과 여성의 자유를 위해 반정부 시위 나선 이들
목소리 내기 어려운 이란 국민 위해 나라 밖에서 대신 목소리 내고 있어
한국도 자유 위해 싸웠던 시절 생각하며 반정부 시위 지지·이해 부탁
노태하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3-30 00:05:55
 
▲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는 한국에서 이란 내 여성의 권리 향상과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왼쪽부터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 소속의 호다·박씨마 목사·뉴샤. Ⓒ스카이데일리
 
 
이란에서는 1980년대에 일어난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며 이슬람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여성에 대한 교육·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사회 활동 전반에 대한 여성의 활동에 제약을 걸고 히잡을 착용하게 하면서 이슬람 정권에 대한 이란 내 각계각층의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던 중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며 도덕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연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이를 계기로 재한 이란인 사이에서도 이란 내 여성의 인권 신장 운동을 탄압하는 이란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일었다.
 
한국에서 이란 내 여성의 권리 향상과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의 박씨마 목사와 재한 이란인 뉴샤와 호다를 만났다. 한국에 귀화한 박씨마 목사를 제외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신상에 관해서는 20대 중반의 유학생으로만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혁명으로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며 여성 인권이 억압되기 시작했죠”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박 목사는 현재 이란 내에서 자유를 빼앗긴 여성들의 삶에 대해 설명했다.
 
“1979년에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고 지금까지 43년 동안 이란에서 여성의 권리는 완전히 없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 같은 의문사도 발생하게 된 것이죠. 현재 이슬람 정권 하의 이란에서는 여성에겐 권리도 자유도 없어요.”
 
이란 혁명으로 불리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1979년 2월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팔레비 왕조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이슬람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킨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신정일치 국가가 된 이란은 대통령보다 높은 자리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과거 복장이 자유로웠던 여성들에게 얼굴을 가리는 히잡을 착용하게 하고 여성의 삶에 각종 제약을 걸었다.
 
박 목사는 이란에서도 이슬람 혁명 전 팔레비 왕조 때는 여성의 자유가 보장돼 여성들의 사회 활동도 활발했지만 혁명 이후 여성을 억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79년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성 인권을 억압하기 시작했어요. 사회에서 여성을 배제시키고 집에만 있게 만들어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에 대해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죠.”
 
호다는 구체적으로 이란에서 여성들이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여성은 이란에서 가수가 될 수 없고 운동 경기장 관람을 할 수 없어요. 또 여자는 판사도 될 수 없어요. 그리고 외국에 나갈 경우에는 반드시 아버지나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죠.”
 
박 목사는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로 전 세계에 이란 여성의 인권 탄압과 이란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알려졌지만 이 시위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고 밝혔다.
 
“사실 이란 정부의 여성 인권 탄압과 이에 맞서는 반정부 시위 움직임은 이슬람 정권이 집권한 이후 43년 동안 계속해서 이어져 왔어요. 단지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을 계기로 이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을 뿐이죠.”
 
 
▲ 지난해 10월16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에 나선 재한 이란인 네크워크.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 제공)
 
마흐사 아미니는 지난해 9월 머리에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경찰은 기저질환을 사망 이유로 밝혔지만 이후 이에 반발해 이란에서는 히잡 반대 시위에 이어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 없이는 이란은 변할 수 없어요”
 
박 목사는 이란 내에서 시위가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란 혁명으로 여성 인권이 억압되는 현실에 대해 혁명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란 여성 3000명이 이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반정부 시위를 이어 갔지만 그때마다 이란 정부가 시위자를 잡아서 죽이거나 감옥에 잡아 가두면서 반정부 시위는 크게 번질 수 없었어요.”
 
뉴샤는 이란 반정부 시위의 진정한 목적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고 말한다.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정부 지도자의 뒤에는 호메이니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은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가 있어요. 그를 정치에서 손 떼게 하는 것이 반정부 시위의 목적이죠. 그 사람이 존재하는 한 이란은 변할 수 없어요.”
 
박 목사는 한국 내에서의 이란 반정부 시위가 이란의 자유를 찾는 데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설명했다.
 
“이란 안에서는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없어요. 그래서 그 소리를 우리가 밖에서 대신 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죠. 이를 통해 전 세계에 이란의 상황을 알리려는 거예요. 이렇게 외부에서 이란의 상황을 알리는 활동을 통해 이란 정부에도 부담을 줄 수 있어요.”
 
이들은 한국 이외에도 이란 국외에서 벌이는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전 세계에서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로스엔젤레스·워싱턴·뉴욕·달라스를 비롯해 캐나다의 토론토 그리고 유럽의 벨기에·스위스·독일·영국·프랑스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진행되고 있죠.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독일에서 약 10만 명이 모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있었어요.”
 
▲ 26일 재한 이란인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박씨마 목사는 한국에서의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이해를 부탁했다. Ⓒ스카이데일리
 
박 목사는 이란 바깥에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에도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금 캐나다에 있는 지인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고 큰 이슈에 대해서도 소통을 하고 있어요.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는 외국의 커뮤니티는 대부분 연결되어 있다고 보면 돼요.”
 
끝으로 박 목사는 한국에서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이해와 지지를 해주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한국도 예전에는 자유를 위해서 싸웠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한국 내의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해 지지와 이해를 해 줬으면 좋겠어요. 또 우리가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허용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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