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에로 영화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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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30 08:12:16

에로 영화가 사라졌다. 2003년 ‘실미도’가 처음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데 이어 지금까지 29편의 영화가 1000만 기록을 세웠다. 그 중에 에로 영화 또는 성인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는 것은 물론 언저리에 가까이 간 경우조차 없다.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1972)’는 지하에서 은밀히 유통되던 하드 코어 포르노를 상업극장으로 끌어올리며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포르노 양성화의 기수 역할을 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영화 ‘엠마뉴엘(1974)’도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어쩌다 프랑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는 사람은 이 영화 본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길 정도였다. 뒤이어 ‘애마부인(1982)’ ‘원초적 본능(1992)’ 같은 작품이 나왔다. 모두 당시 사회의 금기를 깨는 역할을 했다.

이때까지가 에로 영화의 전성기였다. 이후 눈에 띌 만한 작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할 만한 작품으로는 양가휘·제인 마치가 주연한 ‘연인(1992)’, 한국 영화 ‘해피엔드(1997)’, 주연배우 탕웨이가 명성을 얻은 ‘색, 계(2007)’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몽상가들(2005)’ ‘숏버스(2006)’ 같은 노출 수위가 높은 영화들이 나왔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에로 영화의 역사는 길다. 영화의 등장과 발전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큰 작용을 했다. 에디슨이 만든 초기 영화 중의 한 편이 ‘키스(1896)’였다. 이후 영화들은 여배우를 조금이라도 더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가슴이 파인 옷을 입도록 했고 몸매가 드러나는 포즈를 취하게 했다.

오랫동안 영화나 TV에서 인기를 모았던 ‘타잔’ 영화는 사실 어른들을 위한 성인 영화였다. 1921년 로스코 아버클의 난교 파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계기로 할리우드는 타락의 도시로 비난을 받았다. 이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1930년부터 제작 규정이 시행되어 조금이라도 음란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금지했다. 이 규정은 윌리엄 해리슨 헤이즈가 미국영화제작자협회의 회장을 맡은 후 더욱 강화되어 ‘헤이즈 코드’라는 미국 영화 검열기준으로 작용한다.

심지어 부부라 하더라도 같은 침대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각각 침대를 써야 할 정도였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나 ‘자이언트(1956)’ 같은 영화에서 부부가 따로 침대를 쓰고 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제작자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밀림 속으로 들어가 타잔을 벗겼다. 더구나 타잔 역의 배우들은 근육 우람한 섹시남들이었다. 근대 5종 경기나 수영선수 출신인 조니 와이즈뮬러·렉스 바커·조크 마호니·고든 스코트 등은 조각 같은 몸매를 자랑했다. 당시 영화에서 옷을 벗고 맨몸의 근육을 드러낼 수 있는 영화는 ‘타잔’ 시리즈뿐이었다. 상대역 제인이 자주 물에 빠지거나 수영복 몸매를 드러낸 것은 남자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영화 흐름상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도 여배우를 벗기거나 수영 장면을 집어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서부영화 ‘레드 선(1971)’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 나오고, 사무라이 검객이 술집 여종업원과 잠자리에 드는 장면을 비춘다. 당시 이 영화 수입 과정에서 여배우의 가슴이 드러나는 장면이 조금이라도 더 길게 나오도록 수입사가 검열관들에게 로비했다는 이야기가 일화처럼 전한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중 여배우의 가슴이 드러난 첫 번째 작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원초적 본능(1992)’에서 주인공 역의 샤론 스톤이 경찰의 심문을 받을 때 노팬티로 다리를 바꿔 꼬는 장면은 보는 사람의 숨을 멎게 할 정도로 자극적이라서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도 ‘운명의 손(1954)’은 처음으로 키스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라는 기록을 세웠다. 지금이야 이야기 거리조차 안 될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남녀가 실제로 키스하는 장면을 보여 주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라는 감탄과 탄식의 소리가 동시에 나왔다. ‘해피엔드(1997)’는 여배우의 격렬한 정사 장면이 등장한 영화로 충격을 주었다. 주인공의 가슴을 노출하는 것은 물론 전라의 누드 장면까지 보여 주었다.

에로 영화가 상품이 되지 않는 현상은 영화제작자들의 중요한 아이템 하나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벗기는 영화는 기본은 한다’는 속설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의 성인 영화들이 사라진 에로 영화를 대신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고 섹스리스 부부가 증가한다는 현상도 에로 영화 장르가 자취를 감추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100년이 넘는 영화 역사에서 처음 보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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