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주 
)
“좋은 시를 300편 정도 읽으면 근심과 같은 안 좋은 기운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죠. 시가 주는 정서적인 도움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거예요.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생활에도 여유가 생기고 여유롭게 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시는 ‘젊음’이라고 생각해요. 시를 1000편이 넘도록 접하다 보니 확실히 감정적으로 안정된 느낌이 들어요.”
바삐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선 여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일에 쫓겨, 학업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여유는 내려놓은 지 오래다. 이런 이들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민경자(66) 시 낭송가다. 민 낭송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시의 고고함과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소리 시인이다.
후배들 무대의상·헤어스타일링 손수… “잘하는 후배 모습 볼 때 기뻐요”
“같은 작곡가가 만든 노래라도 가수에 따라 멜로디·음색 등 듣는 느낌이 다르듯 시 역시 낭송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시도 작가의 의도가 다르게 느껴지고 느끼는 감동이 달라져요. 또한 싱어송라이터처럼 노래를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니, 낭송가는 소리 시인이자 작곡가이며 가수인 셈이죠.”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민 낭송가는 방송통신대학교 평생교육원 내에서 ‘알포엠’이라는 시낭송 문학테라피 동아리 회장 겸 주임강사도 맡고 있다. 또 팬플룻 연주도 수준급인 민 낭송가는 동아리 내에서 후배와 제자들에게 시낭송과 팬플룻 연주 두 가지를 가르치고 있다.
“2012년부터 햇수로 12년째 알포엠을 운영하고 있어요. 초창기에는 3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 회원이 55명에 달하는 동아리가 됐죠. 제가 과거엔 의상 디자인·무용 등을 배웠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중단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좌절할 때마다 시가 계속 떠올랐죠. 그것이 알포엠의 시작이었어요.”
민 낭송가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해 시에 사용되는 발음·문법 등 세세한 가르침도 후배 시낭송가에게 전해 주고 있다. 이에 후배·제자들은 졸업 후에도 동아리를 꾸준히 찾는 등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민 낭송가는 후배·제자들의 시낭송 대회가 있을 때면 과거 경험을 살려 의상을 직접 제작하거나 헤어스타일링을 돕는 등 헌신하고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나서고 있다고 한다.
“매일 3시간씩 요양보호사로 일을 해요. 수업료를 일체 받지 않으니 후배들의 시낭송 대회가 있을 때면 옷감 구입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려는 거죠. 무대 의상은 대부분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제가 의상 디자인 재능이 있는데 이렇게 비싼 비용을 내고 후배들의 옷을 사서 입혀 주느니 더 아름다운 옷을 직접 만들어 주자는 생각으로 후배들에게 옷을 맞춰 주기 시작했어요. 가끔은 밤새도록 만들 때도 있었죠.”
민 낭송가는 대회에 참가하는 후배들 의상은 물론 헤어스타일도 손수 매만져줬다. 이를 위해 지난해에는 3번의 실패 끝에 헤어디자이너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단다. 이렇듯 아무런 대가 없이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든 줄도 몰랐지만 특히 후배들이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고생은 다 잊혀지는 것 같다며 그는 활짝 웃었다.
“무엇보다 후배들이 잘 따라와 줄 때가 가장 보람찬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후배가 한 명 있는데, 나이도 많지 않았던 그 후배는 시를 낭송할 때 할머니가 구연동화를 읽어 주듯 시를 낭송했었죠. 이런 점을 지적하면 자칫 기분이 나쁠 수도 있으니 그 후배에게 선뜻 말하기가 어려웠어요. 시간이 필요했죠. 결국 그 친구는 3년간 같이 활동하면서 현재 알포엠에서 가장 시낭송을 잘하는 어엿한 낭송가가 됐어요. 지금으로부터 벌써 6년 전 일이네요.”
“희망을 주는 시… 마음의 여유 찾고 싶다면 시를 가까이 둬야”
“시 낭송가나 국문학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일반 시민이 시를 접하는 일은 드물 거예요. 특히 요즘처럼 수많은 영상 및 디지털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에는 더더욱 시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죠. 하지만 오히려 이런 시대일수록 시가 우리 사회에 필요해요. 재차 강조하지만 현대 사회일수록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의도적으로라도 시를 가까이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지하철 스크린도어에도 좋은 시들이 많이 게시돼 있잖아요. 지하철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 만이라도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고 시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에 드는 시가 있다면 사진을 찍고 간직하며 자주 찾아보는 것도 좋겠어요. 해당 작가의 다른 시를 찾아보는 것도 시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죠.”
민 낭송가는 시를 단순히 감상하기 위해 읽는 것과 다른 사람을 위해 낭송하는 일은 확연히 다르다고 설명한다. 시 낭송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학습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쉬워 보일 수 있으나 단기간에 모든 노하우를 익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여느 전문 영역과 마찬가지로 수년간 꾸준히 배우고 공부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 낭송가가 되려면 시를 좋아하는 마음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를 오랜 기간 배우고 낭송하려는 노력과 정신력이 없이는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꾸준히 시를 읽고 오랜 시간을 들여 시를 익힘으로써 스스로 마음의 여유가 생겨야 그 여유를 남에게 베푸는 법도 자연스레 터득하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저희는 한 달에 한 번씩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장기요양원으로 어르신들을 찾아 뵙고 봉사하고 있어요. 시 낭송과 봉사는 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니 서로 연결되는 거죠.”
민 낭송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목표는 국내 예술인들의 성지로 꼽히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후배들과 함께 ‘시 낭송 퍼포먼스’ 무대를 꾸미는 것라고 한다. 개인이 꾸린 단체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공연한 적이 없는 만큼 최초로 무대에 서겠다는 포부다.
“저희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하모니카·색소폰·우쿨렐레 연주자 등 재능꾼이 많아요. 저도 팬플룻 연주를 하고 있으니 이들과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에서 ‘합주’를 하는 것이 꿈이에요. 물론 시 낭송과 함께 해야겠죠. 제가 만약 이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뒤를 이어줄 후배가 물려받아 시 낭송 모임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서 국내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민 낭송가는 故문병란 작가의 ‘희망가’라는 시를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았다. 모든 구절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느껴져 한 구절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가장 아끼는 시라고 했다. 그는 마치 노래하듯 가볍게 ‘희망가’의 첫 구절을 읊었다.
“얼음장 밑에서도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게 해 주는 시이기 때문에 제가 자주 찾고 아끼는 시예요. 근본적으로 시가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 주는 것이라면, 시에서 얻는 희망만큼 또렷한 것이 있을까요.”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5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