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 영국 마을 애쉬본의 특이한 축구경기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이진·안토니 디쉴드의 한국·영국 두 나라 이야기

이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21 08:48:36

영국 더비셔(Derbyshire)주에 위치한 애쉬본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영국 풍경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진다. 예상했던 것처럼 초록색 들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을 양떼는 보이지 않고 갑자기 가파른 언덕길이 끝없이 내려가다가 다시 하늘을 향해 한없이 올라간다.오르막길 정상에 올라서면 ’훌래쉬‘라는 푯말이 보이는데 이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영국에서 보기 드문 역동적인 자연 환경이 한적한 인가와 어색함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촬영 현장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이 가지는 색다른 매력은 아마도 다른 차원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 같은 신비감과 무한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애쉬본은 옛 영어 이름이라는데, ’시냇가에 아쉬 나무가 자라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이 마을은 고풍스러운 정감과 그윽한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길 뿐만 아니라 영국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12세기부터 중세 수도사들이 시작했다는 애쉬본 축구 경기가 그것이다.

2003년에는 영국의 현(現) 왕 찰스 3세가 초빙돼 단상에서 축구공을 시축해 경기의 시작을 알리기도 했다. 이 경기는 오후 2시에서 밤 10시까지 계속되며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우직과 끈기에 바탕을 둔 중세 인류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의 강을 기준으로 북쪽과 남쪽 출신의 1000명이 넘는 청년들이 두 팀으로 나뉘고, 강을 따라 4.8km 떨어져 각각 남과 북에서 마주 보고 있는 두 물방앗간을 골대로 삼는다.

▲ 애쉬본 마을에는 주민 1000여명이 선수가 되어 공을 쫓아다닌다. (사진=필자 제공)

공을 차거나 던지거나 럭비 경기에서처럼 들고 달릴 수 있으나, 경기자의 숫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만날 수 없다 한다. 오히려 축구공은 1000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의 손끝에 밀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모습이다. 따라서 경기가 시작되면 떠다니는 공을 잡으려는 경기자들이 야생마 무리처럼 어디선가 나타났다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번개같이 사라진다. 이로 인하여 마을 전체는 축구 경기장이 되고 관중은 얼떨결에라도 이 거침없이 휩쓸어 가는 경기의 와중에 섞이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길가의 가게나 집들의 창문은 물론 주차된 자동차들조차 깨지고 망가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일쑤였다고 하니 말이다.

애쉬본 축구 경기가 열린 날, 마을 내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은 모두 마을 외곽에 마련된 주차지역으로 옮겨지고, 거리의 가게들 전면엔 온통 각목으로 방어벽이 쳐졌다. 경기가 시작되는 마을 광장에는 왁스 재킷과 웰링턴 부츠로 단단히 무장하고 모인 수천 명의 인파로 연중행사의 열기를 실감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을 덩달아 설레게 했다. 드디어 단상에 오른 시장과 마을 주요 인사의 신호로 ’오울드 랭 자인’과 애국가 제창이 끝나자 초빙된 유명인사가 2023년의 축구공을 경기자들을 향해 시축했다.

이후 두 시간 동안 보이고 들리는 것이라곤 강물처럼 이리저리 흐르는 군중의 머리와 때때로 터져 나오는 함성뿐이었다.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듯한 감탄사가 들려와 발꿈치를 들어올려 바라보니 어느새 나타난 경기자들이 일제히 하늘로 뻗은 손끝 위로 축구공이 ‘잠깐’ 나타났다가 번개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다음 날, 비 속에서도 경기는 계속되었고 두 팀은 강물을 가로지르며 진흙투성이가 되는 혈전을 벌이다가 저녁 늦게 윗마을 팀에서 한 골을 넣으며 2023년 애쉬본 축구 경기를 마쳤다 한다.

Carrying the scorer on shoulder high in triumph (득점자를 의기양양하게 어깨에 태우다)

아쉬본 축구 경기의 규정에 따르면 일단 득점이 발생하면 경기가 일시 중단되고 득점한 팀의 ‘팀원들은 득점자를 의기양양하게 어깨에 태우고’ 승전가를 부르며 마을의 호텔로 가 축하주를 마시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경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Traditionally in England on Saturday ladies go out shopping and men go to a football match. (잉글랜드에서는 전통적으로 토요일에 가정주부들은 쇼핑을 나가고 남자들은 축구경기에 간다.)

이진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