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50] 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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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연재소설

꿈속에선 엄마 목소리만 들려요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7 11:12:14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많이 내려 쌓여 있었다. 보민은 해주댁과 마당에 쌓인 눈으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었다. 숯과 나뭇가지로 눈·코·입을 해달고 땔감용 긴 가지로는 팔을 만들었다. 해주댁은 어른 눈사람 옆에 아기 눈사람을 하나 더 만들었다. 붉은 고추로 웃는 입을 달아 주었다.

“보민아, 이것 봐라. 꼭 네 입술 같다.”

“얘는 보민이, 이 큰 눈사람은 해주댁 아줌마!”

보민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보민아!”

“왜요, 아줌마?”

“너, 로제타 선생님한테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나?”

이 말에 보민의 미소가 싹 가셨다. 양미간을 모으며 기억을 더듬던 보민이 대답했다.

“잘 생각 안나요. 엄마가 보고 싶은데 꿈속에선 엄마 목소리만 들려요. 엄마가 자꾸만 멀어져서 나는 계속 따라갔는데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이 말에 해주댁이 울컥했다.

“보민아, 아줌마가 미안하구나. 그런 걸 물어봐서. 생각하지 마. 언젠가는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너한테는 로제타 엄마가 계시지 않니?”

해주댁은 보민을 끌어안았다. 아이한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미안했다.

“이따 오빠가 오면 썰매를 타자!”

“지난 겨울에는 궁궐에서 스케이트를 탔어요. 아줌마, 스케이트 알아요?”

보민은 스케이트 탄 자랑을 했다.

“스케이트? 그게 뭘까? 보민이는 정말 신났겠구나. 국왕전하는 어떤 분이셨어? 잘 생기셨든?”

“음, 키는 아줌마보다 조금 크고 얼굴은 하얗고 잘 웃으시고 저를 쓰다듬어 주셨어요.”

보민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원익이 돌아왔다. 원익은 장터 신발전에서 일하고 있다.

“오빠, 오빠! 아줌마랑 썰매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나 썰매 태워줘요~”

하루사이에 친해진 보민은 원익의 허리춤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원익은 보민의 애교에 벙글거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고종은 나인 명준과 마주하고 있었다. 창밖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지난 겨울 스케이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서양친구들을 위해 만든 자리였지만 고종과 왕비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국왕이 만든 스케이트에 감탄하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장갑을 끼고 신나게 얼음을 지치던 아이들을 보며 어린 시절 썰매의 추억이 따라왔다.

“전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명준의 음성에 고종은 정신이 들었다.

“명준아. 지난해에 너는 스케이트를 타지 못했지?”

“전하, 소녀는 윗전을 모시는 나인이옵니다. 전하께서 즐거워하시는 것만 보아도 좋습니다.”

명준이 의젓하게 대답했다.

“명준아, 오늘은 향원정 연못이 꽝꽝 얼었을 것이다.”

고종은 강 내관을 불러 작년에 만든 스케이트를 찾아보라고 명했다. 잠시 후 강 내관이 어린이용 스케이트를 하나 찾아 왔다. 붉은색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나가볼까?”

고종은 명준에게 스케이트를 신겼다. 강 내관이 옆에서 법도에 어긋난다, 체통을 지키시라,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고종과 명준은 향원정 연못으로 내려갔다. 연이은 추위로 물은 깊숙이 얼어 있었다.

“자, 내 손을 잡고 걸어 보거라.”

고종이 명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준은 국왕의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서, 잡으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