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49] 해주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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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데 내 이름을 아는 걸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6 11:22:12

한 달 후 로제타 선생은 제물포항에서 배를 타고 미국 길에 올랐다. 그 사이 보민은 해주댁과 친해져 있어 로제타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웠다. 씩씩하고 발랄한 보민은 엄마와 에스더 언니가 큰 배를 타고 떠나가는 것에 신기해했지만 더 이상 그들이 보이지 않자 해주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 서울에 도착하고 해주댁이 말했다.

“보민아, 아줌마 집에 가볼까? 네가 좋아하는 고구마 말랭이 있는데.”

보민은 좋다고 했다. 집은 동대문 로제타 선생의 진료소 가까이에 있었다. 해주댁은 작은 사립문을 들어가 따뜻한 안방으로 보민을 데리고 갔다.

“잠깐만 있어. 아줌마가 밥 차려 줄게.”

해주댁이 나가고 보민은 찬찬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세 단 서랍장 위에 이불이 올려 있고 맞은편 벽에는 옷가지 몇 벌이 있었다. 작은 탁자 위에 책 한권이 놓였고 바닥에는 방석이 있었다. 로제타 엄마가 미국으로 갈 때 함께 가자고 했지만 보민은 썩 내키지 않았다.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서 떠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요즘 만난 해주댁 아줌마가 계셔서 외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셔우드랑 넓고 넓은 미국에서 재미있게 보내시겠지? 나도 좀 크면 가보아야지. 애덕이랑 해린이와 같이 놀러간다면 좋겠다.’

보민은 방석 위에 엎드렸다. 해주댁 아줌마의 체취가 느껴졌다. 보민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밖은 어두워져 있고 방안에는 호롱불이 밝혀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하도 곤하게 잔 바람에 보민은 금방 정신이 들지 않았다. 밖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오늘 장은 어떠했느냐? 안에 보민이가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자.”

“보민이요? 정말 보민이가 왔습니까?”

놀란 음성이었다.

‘누구지? 누군데 내 이름을 아는 걸까?’

보민은 그 바람에 잠이 확 깨었다. 마루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원익아, 우리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자꾸나. 보민이도 무사하고... 고생스럽더라도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면서 버티어 보자꾸나.”

“어머니, 저는 이제 장터 일에 익숙합니다. 어르신들도 잘 해 주시고 어머니만 건강하시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원익이라는 청년의 목소리가 씩씩하다.

‘참, 아줌마한테 아들이 있다고 했지! 바로 그 오빠구나.’

보민은 자는 척하고 좀 더 있기로 했다. 그런데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꼬르륵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울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보민이가 깨어난 모양이야.”

그 소리에 해주댁이 방문을 열었다. 잠시 후 그들은 동그란 밥상을 가운데 하고 다정하게 앉아서 저녁을 먹었다. 해주댁은 보민을 위해서 계란말이와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해주댁의 아들 원익은 보민보다 다섯 살이 위였다. 키가 훤출하고 잘 그을린 피부에 탄탄한 어깨를 가졌다. 균형 잡힌 얼굴에 잘 생긴 인중이 돋보였다.

“보민아. 내일은 학교가 쉬는 날이잖아. 아줌마네 집에서 자고 가면 어떨까?”

수저 가득 밥을 퍼서 찌개와 함께 먹는 보민의 모습을 보며 해주댁이 물었다. 보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없이 그릇을 비웠다. 아주 어릴 적 먹었던 조선의 맛이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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