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48] 여인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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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행동과 말씨는 교양있고 차분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5 11:02:41

겨울이 깊어가면서 로제타 선생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지도 벌써 1년이 되었다. 그간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편지가 본국에서 날아왔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병환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구여관은 그런대로 자리가 잡혀 갔다. 로제타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동생인 점동(에스더)이 손이 야문 조수가 되어 웬만한 조치는 척척 해내고 있었다.

에스더는 벌써 열여섯 살이다. 서양에서 온 여성의사들이 조선의 여인들을 치료하고는 있었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이라고 로제타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에는 조선인 여의사가 필요했다. 교단의 허락을 받아 미국으로 가는 길에 에스더를 데리고 가기로 로제타는 마음을 먹었다.

조선의 관습을 따르면 에스더는 진즉에 결혼을 했어야 하지만 정작 에스더는 남자와 결혼에 통 관심이 없었다. 에스더의 아버지도 딸의 결혼을 몰아붙이지 않는 기색이어서 에스더의 미국 유학길은 별 장애가 없었다. 그래서 로제타 선생은 친정에 갈 때 아들 셔우드와 에스더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문제는 보민이었다. 보민은 아직 어려서 미국에서 공부시키기에 적합지 않았다. 또 로제타 선생도 본국 여행길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더우드 부인에게 맡기기도 망설여졌다. 언더우드 부인은 이미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이 있었다.

로제타 선생이 이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계획할 무렵, 보구여관으로 한 여인이 찾아왔다. 에스더의 기별로 누가 그녀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진료를 끝낸 저녁에 만나 보았다. 등불 아래에 비친 여인은 나이는 삼십 중반으로 흰 얼굴에 미인이었다. 이목구비가 균형이 잡혔고 기품이 있었다. 로제타 선생이 방에 들어서자 그녀는 일어나서 예를 표했다.

“왜 저를 찾으셨나요?”

로제타 선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을 압니다. 손에 화상을 입어 몇 년 동안 손가락이 붙어버린 아이가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고쳐주셨지요.”

로제타는 그 소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피부이식을 해야 했는데 환자가 심하게 거부해서 로제타 선생이 자신의 피부를 떼어 이식해 주었었다. 효과가 나타나자 소녀의 가족들과 보구여관 선생들의 피부까지 함께 떼어내서 여러 번에 걸친 피부이식수술로 완치된 아이였다.

“누군가 또 심한 화상 환자가 있나요?”

로제타 선생이 물었다. 심한 환자라면 지금이라도 왕진가방을 챙겨야 했다.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선생님. 사실은 제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저는 요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갑자기 죽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먹고 살 길이 막막합니다. 선생님의 소문은 멀리까지 났습니다. 정말 좋은 분이라고 모두 감사하고 있답니다. 거처할 곳은 있으니 허드렛일을 맡겨 주시면 됩니다.”

여인은 공손하게 말했다. 행동이나 말씨가 교양 있고 차분했다. 마침 주방 일을 도와주던 부인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일손이 비어 있는 중이었다. 로제타 선생은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여인은 자신을 해주댁이라 불러달라고 했다. 조선 여인들은 특별한 이름 대신 고향 이름으로 호칭되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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