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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든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해요.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약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할 경우 3년이 걸려요. 하루 10시간은 쉽지 않지만 6시간은 할 만한 거 아닌가요? 그러면 5년이 걸린다고 하네요. 지식이나 경험은 축적되지 않으면 활용할 가치를 갖지 못하죠.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래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인내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죠.”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비자 정책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오랜 기간 TV‧라디오‧신문 등 다수의 매체에 출연하며 열정적인 해설과 논평으로 이름을 알려 왔다. 그러다 보니 소비생활에 관한 온갖 주제로 기자들로부터 질문 세례를 받곤 한다. 하루에 기본적으로 4~5통의 전화를 받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화가 기본적으로 4~5통은 와요. 제일 많이 받을 때는 하루에 14~15통도 받아봤어요. 근데 개중에는 여러 사정으로 기사를 안 실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한 달에 보통 한 40건 정도 기사에 제 이름이 올라가요. 그러니까 1년에 약 500개 기사에 제 이름과 설명이 실리는 셈이죠.”
“공부할 때 누군가가 의견을 주거나 해결책을 알려 주면 가뭄의 단비처럼 여겨졌어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해결책에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옛날의 저처럼 기자들에게 가뭄의 단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는 정년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올해 대한가정학회 제51대 회장에 취임해 특유의 성실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한가정학회는 1947년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창립된 학회로서 7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인간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아동·가족·식품 영양·의류·주거·소비자·가족 자원 관리·가정 교육 등 우리 일상과 밀접한 생활 자원을 연구하고 있다.
“저의 전공과 교수 생활에 만족해요. 더욱이 학생들을 돕는 직업이라는 거, 연구를 통해 내 이름으로 업적을 남길 수 있으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죠. 저는 일을 하는 데 있어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더 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죠.”
“제가 학회장을 처음 하는 게 아니라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하려고 해요. 학회에선 연구 결과 발표와 공유가 이뤄지는 학술대회를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기는데 대체로 봄과 가을 두 번 개최하거든요. 학술지가 수준 높게 발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열정‧정직‧책임감이 삶의 지향점
이 교수는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1남3녀 중 둘째였는데 언니와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틈에 끼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 자신이 집에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제가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그런 세대에 태어났죠. 남동생은 우리 집의 귀한 남자애라 소중했고 언니는 맏이이기 때문에 존중받고, 여동생은 막내기 때문에 귀여움을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뭔가 집에서 존중받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죠.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창시절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게 된 그는 정화여중과 경기여고를 나왔는데, 당시 마지막으로 시험을 치르고 경기여고에 입학한 학년이었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공부할 장소가 마땅치가 않아서 주로 독서실에 가서 공부했죠. 그냥 한 곳에 눌러앉아 진중하게 파는 걸 잘했어요. 시립 독서실 식당에서 국과 밥을 사 먹으면서요.”
명문고에 진학할 정도로 우등생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고지식하고 늦된 학생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저는 그리 뛰어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보다 더 많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걸로 실력을 키웠죠. 그래서 즐기는 거‧노는 거‧쉬는 거 잘 못하고 살았어요. 저는 공부가 익숙한 거였지 재미가 있어서 한 건 아니었거든요. 내가 원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한 거였죠.”
“공부를 잘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해도 원하는 등수로 올라갈 수 없을 때, 특히 고교 시절 느꼈던 좌절감이 오랜 기간 저를 괴롭혔죠. 혼자 공부하며 그걸 돌파하려다 보니깐 남들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때부터 일 중독이 습관화된 것 같아요.”
고3 시절 대학에 진학할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대학에 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언니는 대학을 못 갔어요. 저도 서울대에 못 붙었으면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죠. 한집에 살면서 언니는 직장으로 돈 벌러 다니고 저는 대학을 다니니까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알바 하려고 애를 많이 썼고 우리 때는 가정교사 많이 했거든요. 그거 하려고 노력했죠.”
당시 서울대는 신입생을 계열별로 모집하고 2학년 올라갈 때 전공 학과를 선택하던 때여서 소비자 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이 교수는 가정관리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서울대생이라는 자부심보다는 가정관리학이란 이름 때문에 위축감이 들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가정이 사회를 지탱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취업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학과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면서 지냈어요. 특히 가정대학은 여학생만 있었는데, 머리에 든 건 없이 시집갈 생각만 있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남학생들도 꽤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정대학을 없애야 한다고 교내 신문에 기고한 법대 남학생도 있었죠. 교내 신문에 그 글이 실렸어요. 요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사회구성원 존중받는 사회 만들어야
그는 1980년 서울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큰 결단을 내렸다. 원래는 취업할 계획이었지만 친한 친구들 모두가 대학원에 진학하자 숙고 끝에 인생의 진로를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던 어머니도 그런 그의 결정을 응원했다.
“어머니는 모성애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죠. 여성도 능력이 있으면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계셔서 제가 대학원 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어요.”
하지만 당시에도 집안 형편이 그다지 좋지 못했고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군대를 제대한 후 괜찮은 4년제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 돈을 벌어 가며 대학원에 다녀야 했다.
“엄청 눈치를 보며 대학원에 다녔지요. 돈도 벌면서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모교 중학교에 시간강사 자리를 부탁해 한 주에 18시간씩 강의하며 대학원 공부와 병행했죠. 시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말 4시간 정도 자면서 강의하고 공부했어요.”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1982년 석사학위를 받고 강사 생활을 하며 전문직 여성으로 입신할 수 있었지만, 당시 어머니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기억이 마음 한편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털어놨다.
“정말 가슴 아픈 건, 저희 어머니는 제가 대학원까지 나왔으니 뭔가 대단한 결과가 있을 줄 아셨어요. 어떻게 해야 교수가 되는지, 강사는 뭐고 교수는 뭔지 전혀 모르셨죠. 제가 석사학위 받고 강의를 하나 했는데, 당시 월 10만 원 정도 받았거든요. 제게는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 친척과 전화할 때 이 얘기를 하는 걸 듣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죠.”
이후 이 교수는 자신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1985년 대전에 있는 배재대 가족교육과 부교수로 임용됐고, 1993년 서울대에서 소비자아동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94년 인하대로 이직해 대학교수로서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겨 왔다.
그는 한국소비자학회장·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장·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회장·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비상임이사·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1년엔 소비자 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근정포장도 받았다.
이 교수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빨리 처리하지 못해 인천의 학교와 일산에 있는 집을 오고 가는 단순한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명예에 대한 욕구가 커 일을 중시하며 살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은 다소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행정고시 출신의 동갑내기 공무원과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집에서 쉴 땐 멍하니 TV를 보면서 소비생활과 트렌드를 파악하죠. 최근 학회 일로 바쁘다 보니 소비환경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저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 걱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소중함을 못 느끼고 뭔가 부족하고 불만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우리 사회에서 사리사욕 없이 공공의 목적에 맞게 열심히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어떤 영역이든 성실함·인내·꾸준하게 하는 것·열정이 제일 중요하죠. 정말 식상한 단어들이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아요. 사회생활에서든 가정생활에서든 뻔하고 당연한 덕목들이 잘 실천된다면 우리 사회에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사회의 한 영역에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해 가는 모든 사람은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레벨에 있든지요. 한국 사람들은 인정 욕구가 강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욕구가 강해 자신의 소중함을 잘 못보고 뭔가 부족하고 불만족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요. 전 사회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이런 현실을 바꿔 나갈 필요가 있어요.”
◆프로필=△1958년 서울 출생 △1980년 서울대 가정관리학과 졸업 △1982년 서울대 가정관리학과 대학원 석사△1985년 배재대 가정교육과 부교수 △1993년 서울대 대학원 소비자아동학과 박사 △1994년 인하대 소비자아동학전공 교수(현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2010년 인하대 생활과학대학 학장 △2013년 전국생활과학대학장협의회 회장 △2023년 대한가정학회 제51대 회장. △저서: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와 시장’(2020, 시그마프레스) ‘소비트렌드의 이해와 분석’(2017, 교문사) ‘소비자상담’(2011, 교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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