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47] 다시 해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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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에게 힘이 남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4 10:00:05

“굳이 우리가 청나라 장교로 가장할 필요가 있겠소? 당당하게 명분을 지키며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의병의 기개가 아닌가!”

김이언이 대답했다. 그는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강계성 장교들이 볼 때 우리 군사 중에 청나라 장교가 있어야 마음 놓고 우리를 입성시켜 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리해 질 것입니다.”

창수는 김이언에게 진심으로 충고했다. 창수는 김이언의 의병이 성공할지 우려되었다. 그들은 밤중에 고산진을 침입하여 무기를 확보하고 다음날 밤을 타서 언 압록강을 건너 강계로 나아갔다. 강계 부대 장교 몇이 나와서 그들을 보고 물었다.

“이 공격에 청군이 함께하는가?”

“우리가 강계를 점령하고 나면 곧 청군이 올 것이오.”

김이언이 대답했다. 이 말에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말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다. 바로 숲에서 총성이 울리더니 총탄이 쏟아져 내려왔다. 빙판 위에서 천 명에 가까운 군사와 말떼가 놀라 아우성이었다. 말에서 떨어져 죽는 자, 다치는 자가 엉겨 난리가 났다. 창수의 생각이 적중했다. 창수는 김형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김이언의 이번 실패로 다시는 의병을 모으지 못할 것이외다. 우리가 저들과 같이 할 필요가 있겠소? 잠시 몸을 피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창수와 김형진은 아수라장이 된 곳을 떠나 가까운 촌락으로 들어갔다. 매사에는 지략이 필요했다. 김이언은 장사고 사람을 모으는 능력도 있었지만 성공을 위해서 어떤 꾀가 필요한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의병을 모으는 일에 참여하여 배운 것이 많았다. 압록강 변방의 백성들도 한마음인데 고향 해주사람들 마음은 다를까! 그렇다면 아직은 조선 땅에 머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왕과 왕비를 아끼는 백성들과 도모할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창수는 생각했다.

고향에 오는 길에 길목을 막고 가위와 칼을 든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관원인데 보는 사람마다 닥치는 대로 상투를 자르고 있었다. 창수와 김형진은 상투를 잘리지 않으려고 주로 밤에 움직이거나 산길을 넘나들었다. 창수는 해주에 도착하여 곧바로 고능선 선생을 찾았다.

“창수군, 청나라는 어땠나?”

고 선생이 반기며 물었다.

“선생님, 저는 아직 우리에게 힘이 남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싸울 힘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홍익인간의 뜻도 새겼습니다. 제천당에서 단군 임금님의 영정과 마주하며 꼭 나라를 지키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빨리 돌아왔습니다.”

마음이 급한 창수가 두서없이 쏟아냈다. 창수는 김이언 의병의 거사를 말씀드리며 안 진사와 함께 의병을 일으키자고 제의했다. 그들은 바로 안 진사를 만나러 갔다. 안 진사는 큰 아들 중근과 가족들 모두 머리를 자르고 신식머리를 하고 있었다. 고 선생은 단발을 한 안 진사 가족을 보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의병 이야기를 꺼낼 의욕도 사라졌다. 고 선생은 곧바로 단교를 선언하고는 창수와 발길을 돌렸다.

“창수군, 내 말을 잘 듣게. 조선의 백성들은 머리를 잘리고 민족혼은 짓밟힐 걸세.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이지. 자네는 달아나서 머리가 잘리는 화를 면하도록 하게, 나는 화가 미치면 죽기로 작정을 하였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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