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45] 제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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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 나라를 만드는 작은 돌이 되게 해 주소서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10 09:20:42

다음날 창수는 고 선생의 소개로 참빗장수 김형진을 만났다. 그들은 하룻밤을 지내면서 길을 떠날 궁리를 했다. 김형진은 많은 곳을 두루 다녀 세상 물정에 밝았고 나라를 위해 무어든 해 보겠다는 열정도 있었다. 둘 다 참빗장수 행세를 하기로 하고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함흥을 거쳐 혜산진에 이르니 제천당이 있었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인 제천당은 백두산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뻗어 조선 산맥의 중심을 이루는 곳에 지었는데, 조정에서 해마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제천당 안에는 자애로운 단군의 영정과 환웅천황, 그리고 웅녀의 모습이 함께 모셔져 있었다. 단군임금의 곁에는 잘생긴 백두산 호랑이가 앉아 있다. 당을 지키는 사람에게 물어 보니, 이야기에서는 곰만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실패했지만, 호랑이는 우리 민족이 대대로 섬겨온 산신령으로서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친근한 존재라고 했다.

‘조선민족은 하늘의 귀한 자손’이라는 스승 고 선생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늘 임금 환인의 아들 환웅이 착하게 사는 이 땅의 백성을 동경하여 하늘 왕자 자리를 버리고 내려온 것이 조선의 시작이 아닌가. 그는 사람이 되고 싶은 곰의 소원을 들어주고 심지어 여인이 된 곰과 혼인하여 단군의 아버지가 되었다. 스스로 천손임을 자부하는 민족! 그 민족의 마음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바로 동학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나라와 백성이 위태로운 중에 있다. 제천당을 둘러보는 창수의 콧등이 찡해왔다. 내 한목숨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다. 나의 조상은 신라의 왕통이 아니었던가! 제천당에서 창수는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다졌다. 환웅천황과 단군왕검이 그렸던 그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결심만이 가득했다. 그 나라는 인의(仁義)의 나라, 홍익인간의 나라다. 불쌍하고 억울한 백성이 하나도 없는 곳이다.

‘제가 그 나라를 만드는 데 작은 돌이 되게 해 주소서!’

창수는 단군 임금을 향해 기원했다.

그들은 제천당을 떠나 백두산을 오르고자 모아산으로 향했다. 모아산은 중국땅이었다. 산세는 험했지만 맹수가 없고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나 앞이 잘 안 보일 지경이었다. 큰 나무의 베어진 밑동이 있는데 그 위에 예닐곱 명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정도로 컸다. 창수와 김형진도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요기를 했다. 시원한 산바람에 은은한 피톤치드향이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 주었다. 그들은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우리는 운이 좋은 가 보이. 김 석사, 이렇게 울창한 숲에 앉았으니 신선이 된 것 같지 않은가? 이 그루터기에 누워 한 잠 자고 가면 좋겠네,”

김형진의 말에 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널따란 나무 밑동 위에 몸을 뉘었다.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져 숲의 교향악이 들려온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팔을 베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무아지경에 빠진 그들의 귀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 떼의 사람들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도 놀란 그들은 벌떡 일어나 울창한 나무 틈에 몸을 숨겼다. 열 명이 넘는 사내들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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