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43] 사랑과 정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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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인간’ 네 글자 안에 사랑과 정의가 들어 있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3-08 11:22:53

창수는 벌떡 일어나 선생께 큰절을 올렸다.

“미천하고 몽매한 저를 받아 주시니 영광입니다, 선생님! 제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창수의 음성은 감동으로 떨렸다.

“자, 자, 일어나게나. 자네처럼 좋은 청년을 제자로 두다니 내 말년에 큰 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산림 선생은 참으로 기뻤다. 창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덕과 지혜가 있는 청년이었다. 오죽하면 동학군을 토벌한 안 진사가 창수를 불러 그 부모까지 돌보고 있겠는가. 고 선생은 일어나 창수를 끌어안았다. 덩치와 키가 자신보다 훨씬 컸지만 막내아들을 대하는 듯 살가웠다. 창수는 하루도 빼지 않고 고 선생의 사랑방에서 경전을 배웠다. 마음가짐의 기본이 되어있는 제자라서 고 선생은 창수가 필요로 하는 부분만 똑 떼어내어 가르쳤다. 족집게 과외였다.

“창수군, 맹자의 첫 부분을 읽어 보게.”

“예,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어르신께서 먼 길을 오셨으니 제게 나라를 이롭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왕께서는 어찌 이로움을 말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인(仁)과 의(義)입니다.”

“자네는 이 말이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는가?”

“스승님, 나라 다스림의 기본을 알려주는 말이 아닐까요? 당시 혼란했던 중국의 상황에서 양혜왕이 부국강병이라는 이로움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맹자 선생님은 전혀 다른 말을 하십니다. 코앞의 이익을 좇으면 망하지만 백성을 사랑으로 돌보고 의로움으로 대하면 흥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훌륭하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대입하면 어찌 되겠는가?”

“스승님, 인의의 정치가 기본이지만 지금 조선은 양혜왕 말대로 부국강병이 중요해 보입니다. 저 왜국이 수천 년을 우리에게서 배워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힘센 나라가 되어 조선을 겁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해 동학군은 왜군의 신식무기로 무참히 살해되고 도륙되었습니다. 동학이야말로 신분차별 없는 돌봄과 의로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력이라는 이로움 앞에서 갈가리 찢기고 말았습니다. 동학도들의 피가 온 산과 들을 덮었습니다. 그들은 꽃잎처럼 이 강산에서 스러졌습니다. 비겁한 저는...한 번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토벌군의 집에 숨어 있습니다.”

창수는 목이 메어 더 말할 수 없었다. 삼남지방의 동학도들은 계속 아래로 내몰려 마침내는 진도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양민까지 합하면 희생자는 30만 명에 달했다. 산 전체에 불을 지르는 화공을 당하기도 했고 차례로 목이 베어져 샘에 던져지기도 했다.

“자네가 그리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네. 당장은 그럴 수 있지. 혼란한 시대에는 공자님도 인정받지 못하셨네. 중국은 ‘사랑’이 아닌 ‘힘’으로 통일되었지. 하지만 힘의 이로움은 잠깐이었을 뿐, 결국 공자님과 맹자 선생님의 가르침은 수천 년을 이어오고 있지 않은가.”

고 선생이 창수의 등을 도닥였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그 마음이야. 단군 성조께서 백성을 크게 품어 세우신 뜻인 ‘홍익인간’ 이 네 글자 안에 사랑과 정의가 들어 있네. 그 뜻을 다시금 받들어 세운 것이 동학도 아닌가, 자네 마음속의 그 의분은 꺼지지 않는 불이 될 걸세.”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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