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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전 세계를 흔들 때도 우리는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 연내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한풀 꺾이겠지만, 그전까진 더 혹독한 불황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에 올해에도 불경기 소비 행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그 행태가 양분화되는 경향이 주목된다. 이번주 이슈포커스는 ‘알뜰족’과 ‘프리미엄족’으로 소비 양극화가 더욱 심화하는 모습에서 올해 소비 트렌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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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김학형 팀장|윤승준·장혜원·장은영 기자] 물가가 치솟으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혔다. 경기침체 가능성, 고금리 유지 등을 고려하면 소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달라진다. 작년 말 시작한 소비침체 현상에 많은 이들은 알뜰소비·무(無)지출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거나 아예 지출을 삼가는 식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알뜰소비 트렌드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에서 떠오르는 소비 트렌드 ‘조각·반반·공동구매’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12월 124.0(불변지수, 2015년=100)로 전년동월 대비 2.5% 하락했다. 작년 9월 이후 4개월째 ‘마이너스 소비’다. 품목별로 가전제품(-34.7%), 컴퓨터(-24.2%), 가구(-21.9%), 통신기기(-14.1%), 화장품(-13.4%) 등이 예년보다 덜 팔렸다.
물가가 급격히 오르자 소비활동을 주저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 자료에서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10.1로 전년동월 대비 5.2% 상승했다. 작년 5월부터 9개월 연속 5% 이상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주택·수도·전기·연료(8.0%) 공공요금뿐만 아니라 음식·숙박(7.7%), 의류·신발(5.9%), 식료품·비주류음료(5.8%) 등 일상 소비재도 가파르게 올랐다.
반면 소득은 주춤했다. 가구당 처분가능소득은 지난해 3분기 평균 385만 원으로 전년동기(377만 원) 대비 2.0% 오르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부유한 사람들 얘기다. 소득 1·2분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은 각각 51만 원, 129만 원으로 1년 전보다 0.1%, 1.2%씩 줄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소비 트렌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가성비 소비’를 넘어 한 단계 진화한 ‘절약형 소비’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이끄는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올해의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체리슈머(Cherry-Sumers)’를 꼽았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의 취득과 사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알뜰하게 구매하고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일컫는다.
이는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구매하지 않고 부가혜택만 챙기는 ‘체리피커(Cherry-Picker)’와는 다른 개념이다. 예컨대 체리피커는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돌며 샘플 음식을 맛만 보고 구매하지 않는 반면, 체리슈머는 본인이 필요한 양 만큼만 사기 위해 조각구매·반반구매·공동구매 등의 전략을 구사한다. 현대판 ‘보릿고개’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진일보한 합리적 소비자인 셈이다.
편의점이 체리슈머의 구매처로 각광받고 있다. 대형마트보다 조각구매 등의 전략을 편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전통적으로 원플러스원(1+1) 또는 번들로 포장한 대용량 기획 상품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방식은 많이 살수록 단위당 금액이 낮아지니 합리적 소비활동을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채소·과일·우유 등 신선식품을 살 때는 다르다. 가성비만 고려해 대량 구매하고 유통기한 내 먹지 못하면 오히려 돈을 낭비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조나영(32) 씨는 마트에서 주로 장을 봐오다 얼마 전부터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조 씨는 “마트에서 파는 것 중에는 최소 포장 단위가 2,3인용이거나 1+1로 구성된 상품을 쉽게 볼 수 있는데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양이 필요하지 않다”며 “선택권이 없으니 일단 사오나 금방 야채가 시들어 버릴 때면 매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의점업계는 발 빠르게 소포장 신선제품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마트24의 ‘조각 과일’ 매출은 최근 3년간 평균 28%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작년 1월1일부터 8월7일까지는 1년 전보다 35%나 뛰었다. 이마트24는 ‘껍질 없는 조각사과’부터 여러 종류의 ‘조각 과일’을 혼합한 상품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CU편의점도 지난해 마늘·고추·대파·모둠쌈·양배추·감자 등 채소 15종을 1,2끼 분량으로 소포장한 채소 시리즈 ‘싱싱 생생’을 출시했다. 세븐일레븐은 2021년 신선식품 통합 브랜드인 ‘세븐팜’을 론칭해 1500여개 점포에서 야채·과일·육류·수산물 등을 판매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비슷한 가격대로 1,2인분의 신선식품을 구성한 게 특징이다. 지난해 ‘세븐팜’의 야채·과일·냉동육류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70%·30%· 110% 급증했다.
유통업계는 코로나19 이후 근거리 소비문화가 확산하고 물가가 상승하면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소용량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MZ세대들은 환경 문제에도 민감하다. 가성비도 중요하지만 식품을 필요 이상으로 샀을 때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문제도 무시하지 못한다”며 “이러한 전체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 가장 합리적이고 깔끔한 신선식품 구매채널로 편의점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다면 ‘무지출·앱테크’
알뜰소비를 넘어 무지출을 추구하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 박정수 씨(30)는 점심시간에 외식 대신에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동료 직원들과 사내 휴게실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있다. 이렇게 생활한 지 벌써 2년 가까이 흘렀다. 당초엔 코로나19를 예방하고자 식당에 가지 않고 도시락을 먹었지만 어느 순간 훌쩍 오른 물가에 부담을 느껴 여전히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박씨는 “점심 한 끼에 만 원 가까이 쓰는 게 솔직히 아깝다. 그 돈이면 쿠팡에서 두세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며 “기프티콘이 생기지 않는 한 카페에도 잘 가지 않는다. 사무실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뽑아 마신다. 동료 서너명과 함께 매일 이렇게 보내다보니 불편한 건 없다. 퇴근하면서 그날 돈을 쓰지 않는 걸 확인하면 괜히 뿌듯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점심값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박씨는 ‘앱테크(앱+재테크, 보상형 애플리케이션)’를 활용해 소액의 현금포인트 또는 상품을 얻으며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도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는 대신 중고거래 앱에서 팔아 처분한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할 때는 백화점 등에서 새 것을 사기보다는 앱에서 중고품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해 돈을 아낀다.
박씨는 “집과 지하철역, 지하철에서 회사까지 거리가 멀어 만보기 앱을 자주 이용한다. 이 앱으로 하루 100원 정도 밖에 벌지 못하지만 포인트를 쌓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면서 “최근에는 중고거래 앱에서 오래 전에 선물 받고 쓰지 않던 무드등을 6000원 주고 팔았고 평소에 사고 싶었던 헤드폰을 정가보다 10만 원 정도 저렴하게 중고로 구매했다. 지금 당장 굶어죽을 정도로 힘들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아꼈다는 생각에 월급 보너스 받은 기분이다”고 밝혔다.
물가상승·경기침체 등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서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알뜰소비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소비 충동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유행한 욜로(YOLO·한 번뿐인 인생)와 플렉스(Flex·부를 뽐내는 소비)의 자리는 부지런한 삶을 의미하는 신조어 ‘갓생(God+生)’이 채우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가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보니 물가가 오르자 경제적인 압박을 크게 받은 것 같다”며 “어두운 경제 전망, 낮은 취업률 등 안 좋은 상황들이 겹치면서 (알뜰소비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생존하는 게 쉽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듯이 흥청망청 쓰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잘 꾸려나가는 데 집중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불황과 같은 외부적 요인 외에도 작은 성취를 표현·공유하는 것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심리적 부분이 알뜰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SNS에서는 20·30대를 중심으로 일정 기간 하루 지출 0원에 도전하는 ‘무지출 챌린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물질적인 성취(성공)를 얘기하는 걸 중요시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경험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표현하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게 남들이 보기에 성취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거기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가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임 교수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작은 계획을 세워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과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해당 콘텐츠를 접한 이들도 띠라서 ‘무지출 챌린지’에 참여해 경험적 가치를 얻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전에는 명품을 사서 자랑했다면 지금은 그게 아주 보잘 것 없는 작은 계획이라도 그걸 공유하고 존중해준다”고 덧붙였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알뜰소비가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2023 TOP 10 글로벌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로 ‘짠테크 소비자(Budgeteers)’를 선정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75%의 소비자가 전체 소비지출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유로모니터 코리아 관계자는 “주로 일상 소비에서 지갑을 더욱 조이는 구매가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소비자는 브랜드보다 최저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이커머스(전자상거래)에서 쇼핑하거나 보다 저렴한 PB(Private Brand) 상품으로 구매하는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며 “대량으로 구매하는 벌크형 제품, 여러 유통 채널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D2C(Direct to Customer) 모델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어 “비용 효율적인 구매 옵션 역시 고려대상이 되는데 이러한 점에서 선구매후지불(BNPL) 옵션이 짠테크 소비자 트렌드와 함께 거론되고 있다”며 “물가상승률이 어느 정도 잡히더라도 소비자들은 미래 불확실한 상황을 대비해 당분간 이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여 PB 제품 브랜드와 상설 할인점 유통 채널에게 기회가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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