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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스비 폭등으로 국민의 난방비 부담이 급증하는 ‘난방비 폭탄’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제유가 상승으로 이득을 본 정유업계에게 ‘횡재세’를 거둬 에너지 고물가 지원급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와 정유업계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부는 특정 업계에 이익이 났다고 세금을 추가로 내는 것보다는 법인세를 내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고, 정유업계는 수익의 상당수가 수출로 얻은 것임을 강조하며 가스요금 인상과 정유사의 호황이 별개임을 주장하고 있다.
7조2000억원 규모 지원금 제안… 재정 마련 방안으로 ‘횡재세’ 거론
한국도시가스협회 등에 따르면 1월 도시가스 소매요금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8% 올랐다. 여기에 추운 날씨에 도시가스 사용이 증가하면서 난방비가 몇 배로 올랐다며 난방비 부담을 호소하는 사례도 나왔다.
도시가스비 상승이 부각되며 정치권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6일 ‘난방비 폭탄 민주당 지방정부·의회 긴급 대책회의’에서 7조2000억 원 규모의 에너지 고물가 지원금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지원금 재정 마련 방안으로 ‘횡재세’ 징수를 거론했다.
이 대표는 “에너지 관련 기업이 과도한 불로소득이나 과도한 영업이익을 취한 것에 대해 전 세계에서 이미 시행하듯 횡재세 개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3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초거대기업, 초부자에게는 세금 수십조 원을 깎아주면서 국민을 위한 에너지 지원금 발목을 잡는 것도 국민 기만에 해당한다”며 “윤석열 정권은 0.0001% 특권층과 특권경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특권정부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얻은 법인에 대해 추가 징수하는 제도다. 영국 정부는 2022년 5월부터 자국 에너지 회사를 대상으로 법인세 25%를 추가 부과했고 최근에는 횡재세 세율을 35%로 올렸다. 이탈리아의 경우 2021년 10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초과 이익을 낸 에너지 기업에 15%를 추가 과세했다.
스페인 역시 2023년부터 2년간 한시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2022년 또는 2023년의 수익이 2018~2021년 평균치의 20%를 초과하는 에너지 업체에 초과수익의 33%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현행 법령을 살펴보면 석유사업법 제18조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국제 석유 가격의 현저한 등락으로 이득을 본 자에게서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석유사업법 제18조를 횡재세 도입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에게 물어본 결과 횡재세 도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횡재세 논의의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을 살펴보면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서 라고 명시돼 있는데 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가스요금 상승은 석유 수급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법률이 있기 때문에 시장 경제 원칙 같은 것은 미뤄두더라도 횡재세 부과를 요구하기 위해 법률을 자의적으로 끌어 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는 원유 시추해 판매… 정제·판매하는 국내와 상황 다르다”
지난해 7월에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승이 심화되면서 유럽 국가들처럼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유업계가 이에 반대하며 도입되지 않았다.
정부는 이번에도 횡재세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횡재세 도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추 부총리는 “기업이 수익이 나면 법인세를 통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건강하다”며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이 난다고 횡재세 형태로 접근해 세금을 물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취약 계층에게 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의 금액을 15만2000원에서 30만4000원으로 2배 확대했다. 또한 환경부는 노후화한 보일러를 친환경 인증을 받은 보일러로 교체하면 일반 가구는 10만 원, 저소득가구는 60만 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한다. 횡재세 부과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의 난방비 부담을 해소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정유업계는 횡재세 부과 논의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실적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횡재세까지 물게 되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정유 4사의 분기별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2022년 3분기 SK이노베이션은 영업이익 7039억 원을 기록해 2022년 1분기 1조6590억 원, 2022년 2분기 2조3292억 원에 비해 하락했다. 에쓰오일 역시 2022년 3분기 영업이익 5116억 원으로 2022년 1분기 1조3319억 원, 2022년 2분기 1조7219억 원보다 크게 줄었다.
현대오일뱅크의 2022년 3분기 영업이익은 7021억 원으로 2022년 2분기(1조3702억 원보다)의 절반 수준이고 2022년 1분기(7045억 원)와는 비슷했다. GS칼텍스는 2022년 3분기 영업이익 8176억 원으로 2022년 1분기(1조811억 원)와 2022년 2분기(2조1320억 원)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체적으로 1분기에 좋은 실적을 거두고 2분기에 호황기를 맞았다가 3분기에 하락하는 추세다.
여기에 에쓰오일은 4분기 1575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SK이노베이션 역시 4분기 영업손실 6833억 원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역시 재고 손실로 실적이 크게 하락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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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박서현] ⓒ스카이데일리 |
정유 업계는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 4사 합계 5조 원을 넘어서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호황기가 지나고 전망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고통 분담 요구는 정유 업계에도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정유 업계는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여론전에 나섰다. 대한석유협회는 지난달 29일 정유업계의 석유제품 수출액이 증가한 570억3700만 달러를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71.2% 증가한 금액으로 수출액 증가율 역시 역대 최고 수치였다. 또한 지난해 원유수입액 954만5000만달러 중 60%를 석유제품 수출로 회수해 국가무역수지 개선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횡재세를 주장하면서 주로 해외 사례를 들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전기 요금을 LNG에 연동하다 보니 발전사들을 대상으로 적용하거나 원유를 시추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부과하고 있다”며 “또한 횡재세를 부과해도 다시 원유 시추에 사용한다면 공제해주는 식으로 에너지 공급 확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정유 기업은 석유를 시추하지 않고 수입해서 정제·판매하는 입장이고 수출 비중이 60%를 넘는다”며 “해외 사례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국내 정유사들에게만 무리하게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과 예산안을 짜는 데에 있어 그때그때 관련 기업에게 세금을 거둬서 예산을 확보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예산안을 짤 때 당연히 한 해에 어느 정도의 금액을 쓸지 미리 계산해서 짜는 것이고 새로 추경을 한다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는 것이 맞다”며 “가스요금 인상은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사안이고 그렇다면 기존 예산에서 사용하거나 예비비를 편성해 놨어야 하는데 갑자기 세금을 더 걷는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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