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 사용에 관한 두 나라 운전예법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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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안토니 디쉴드의 한국영국 두 나라 이야기

비상신호는 운전자 간의 예법을 넘어 도로교통 전반의 문제
흰색·검은색 줄이 그려진 ‘Zebra Crossing(얼룩말 횡단보도)’

이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1 08:25:59

흥미롭게도 영국에서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운전면허(Driving Licence)’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영어로 ‘운전자 면허(Driver’s Licence)’라고 표기하고 있다. ‘운전자 면허증’과 ‘운전 면허증’이 실제 도로교통에서 운전예법의 차이로 적용될까? 어쩐지 두 나라의 운전 면허증 명칭에서 주는 어감의 차이만큼 두 나라 도로교통의 근본 취지와 운전예법의 강조점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한국의 제주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던 영국인이 의문을 제기한 운전자 규칙이 있다. 언제 비상신호(Hazard Warning)를 깜빡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국인이 제주에서 본 한국식 비상 신호등 사용은 영국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거나 차 고장으로 불가피하게 멈춰야 할 때만 비상신호를 작동하는 영국식과 달랐던 것이다.

하루는 영국인이 도로를 운전해 가다가 교차로에서 합류하는 차들로 교통이 밀리는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당시 도로 교통 상황은 자칫하면 접촉사고가 날 정도로 혼잡했다. 갑자기 앞 차가 긴급 신호등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영국인은 즉시 도로 전방에 무슨 사고가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 차가 길가에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 뒤에 따라오던 차들은 냅다 영국인 차를 추월해 가고 있었다. 그때 비상 신호등을 켜고 멈췄던 앞 차의 운전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길가에 있던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영국인은 허탈하게 전진하는 자동차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인은 이것을 어쩌다 발생하는 변칙 정도로 이해하고 잊기로 했다. 그러나 그 후 영국인은 똑같은 경우를 수없이 보게 되었다. 아울러 앞서 가던 차가 갑자기 비상신호를 켜고 차선을 연속 옮겨 도로를 빠져나가 길가의 식당으로 가는 것도 종종 보게 되었다. 영국인은 비상신호 작동에 관한 영국식 교통상식이 한국 도로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차들이 모두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차선을 옮겨 가길래 이번엔 또 무슨 일 인가 궁금했다. 다가가 보니 자전거 부대를 추월하기 위한 신호였다. 아마도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니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영국식 교통신호 방식과 다른 또 하나의 예이다.

영국에서는 자전거도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마찬가지 교통 차량으로 취급하고 같은 도로 교통규칙을 적용한다, 따라서 추월 가능 표시가 되어 있는 도로 부분에서 방향 신호등을 깜빡이며 자전거를 앞지르게 된다.

하루는 서귀포를 향해 운전해 가는데 안개가 짙게 깔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지역에 들어서게 됐다. 그는 영국도로에서 하듯 안개등(Fog light)을 켜려고 찾는데 주위를 보니 양쪽 방향의 차들이 모두 비상신호를 켜고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또 다른 비상신호 사용 예였다. 마침내 이날을 계기로 영국인은 영국식 비상 신호등 켜기 교통상식을 한국 도로에서는 잊기로 했다.

그래도 영국인은 한 가지 우려가 마음에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영국인이 볼 때 제주에서 한국운전자들의 비상신호 사용방식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영국식으로 보면 비상상황이란 도로 어디선가 발생하는 예측불허의 긴급사태로 그 영향이 도로교통 흐름 전반에 끼쳐 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뜻한다.

그러므로 영국인은 한국 도로에서 개인 운전자가 개인 사정으로 비상신호를 사용하는 것은 교통신호의 남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이러한 식의 비상신호 사용은 교통의 리듬을 깨뜨릴 것이고 불필요한 교통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염려한다.

영국의 횡단보도 이름과 기능

영국의 횡단보도는 모양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동물의 이름을 딴 횡단보도 이름이 흥미롭다.

▲ Toucan Crossing(남미 열대 부리 큰 새 횡단보도)에서는 신호통제기에서 보행자와 자전거의 통행을 안내한다. [사진=필자 제공]

‘Zebra Crossing(얼룩말 횡단보도)’- 차도에 얼룩말 무늬처럼 흰색과 검은색 가로줄로 표시되어 있는 전형적인 횡단보도를 영국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Toucan Crossing(남미 열대 부리 큰 새 횡단보도)’- 신호통제기에 보행자는 물론 자전거도 포함시킨 횡단보도다.

이 밖에도 ‘보행자 우선원칙’을 나타내기 위해 횡단보도 양쪽 끝에 흰색과 검은색을 칠한 가로등이 한 개씩 서 있는 ‘Belisha Beacon Crossing(벨리샤 비컨 횡단보도), 횡단보도 양쪽에 보행자가 작동하는 신호통제기가 설치된 ‘Puffin Crossing(바다앵무새 횡단보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