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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해동증자’ 의자왕의 비애
해동증자 칭호는 생존전략의 표현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2-11 13:13:34
 
▲ 정재수 역사 작가
31대 의자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이다. 700년 백제역사를 한 순간에 지워버린 망국의 군주이다. 그래서 의자왕의 평가는 항상 부정적이다. 그런데 의자왕에게는 ‘해동증자(海東曾子)’라는 칭호가 있다. 『삼국사기』 기록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 당시에는 해동증자로 불렀다.[事親以孝與兄弟以友 時號海東曾子]’
 
해동(海東)은 한반도를 가리킨다. 증자(曾子)는 공자의 수제자로 『대학』, 『효경』을 저술한 5대 성인 중 한 사람이다. 증자는 효의 상징이다.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를 다한 의자왕은 증자의 모델로 손색이 없다.
 
의자왕은 선화공주의 소생
 
의자왕은 무슨 연유로 해동증자로 불린 것일까? 또한 효도와 우애는 무엇일까? 의자왕의 공식적인 출생기록은 없으나 대략 595년 전후에서 태어난다. 이는 2002년 중국 북망산(하남성 낙양)에서 발견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扶餘隆)의 묘지명을 통해서 확인된다. 부여융은 615년에 출생한다. 의자왕이 20세 전후에서 부여융을 낳았다고 가정하고 이를 역산하면 의자왕은 595년경에 출생한다. 아버지 무왕이 600년에 즉위하니 의자왕은 무왕이 왕이 되기 5년 전에 태어난다.
 
무왕은 사비세력에 의해 옹립된다. 즉위후 맞아들인 왕후(왕비)는 사비세력을 대표하는 사택(沙宅)가문 출신의 여성이다. 이는 익산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안기」에 나온다. 다시 말해 의자왕은 사택왕후가 낳은 정실소생이 아니다. 『삼국사기』는 의자왕을 무왕의 적자(嫡子)가 아닌 원자(元子)로 기록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 ‘금제사리봉안기’ 사택왕후. [사진=필자제공]
  
그렇다면 의자왕의 어머니는 누구일까? 우리가 잘 아는 서동설화에 나오는 신라 26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이다. 의자왕에게는 신라왕실의 피가 흐른다.
 
해동증자는 의자왕 생존의 몸부림
 
의자왕의 효도 대상은 아버지 무왕과 계모 사택왕후이다. 의자왕은 두 사람의 눈밖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신라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형제간의 우애도 같은 맥락이다. 의자왕은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복형제들과의 우애도 다한다. 해동증자는 단순한 효도와 우애의 상징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생존전략으로 인해 나온 표현이다.
 
드디어 참고 인내한 보람이 찾아온다. 서기 632년(무왕 33년) 의자왕은 태자에 책봉되며 무왕의 공식 후계자가 된다. 이때 의자왕의 나이는 30대 후반이다. 통상적으로 왕이 즉위하면 재위초기에 태자를 책봉하는 전례로 볼 때 의자왕의 뒤늦은 태자 책봉은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일본서기』에는 의자왕이 태자 책봉 한 해 전인 631년(무왕 32년) 사택왕후 소생인 풍장(豊璋)을 야마토(일본)에 볼모로 보낸 기록이 있다. 이는 의자왕이 태자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사실을 증언한다. 어찌 보면 의자왕의 태자 책봉은 스스로를 낮추며 쟁취한 승리의 월계관이다.
 
역사는 동전의 양면성을 가진다. 앞면의 밝음보다 뒷면의 어둠이 때론 우릴 감동시킨다. 의자왕의 해동증자 칭호에는 의자왕의 남모를 비애가 숨겨있다.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불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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